전통주의 고독한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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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주변 술집 150여곳 중 전통주점은 15곳뿐

회사원 안모 씨(31)는 지인과의 약속 장소를 정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서울 강남역 근처의 전통주점을 검색했다. 10여 곳이 검색됐지만 유명 주류회사의 체인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주나 맥주를 파는 일반 주점이었다. 안 씨는 “색다른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전통주점을 찾는데, 분위기나 술 종류가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아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일보 인턴기자가 강남역 인근 술집 개수를 직접 세어 본 결과 150여 개 점포 가운데 전통주점은 15곳에 불과했다. 이 중 5곳은 유명 주류업체에서 운영하는 체인점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소주 맥주와 막걸리, 전통주를 함께 파는 일반 주점에 가까웠다.

통계로 본 전통주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침체상태다. 관세청과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탁주와 약주를 합친 전통주가 국내 전체 주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23%에 불과하다. 2010, 2011년 막걸리의 인기로 출하량이 반짝 늘었지만 전통주 출하량은 이후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5년 사이 와인 수입량이 16%, 맥주 수입량이 27% 성장한 것과 상반된다.

전문가들은 전통주가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것은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강한 데다, 업계에서 젊은층의 입맛에 맞는 신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막걸리 열풍 때 생겨났던 기회를 스스로 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최근 전통주 시장을 살리기 위한 기업의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주 시장에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의 핵심은 ‘고급화’와 ‘고객 눈높이 맞추기’다.

이달 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일 만찬 디저트주로 선택된 ‘자희향’을 생산하는 양조회사 자희자양의 노영희 대표는 “전통 방식으로 빚은 우리 술이 싸구려 막걸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와인처럼 향과 맛을 즐기는 술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젊은이들을 겨냥한 전통주가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꽤 희망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강남역 인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전통주점 ‘셰막’이 대표적 사례다. 셰막은 충남 당진시의 신평양조장이 직영하는 곳으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처럼 내부를 꾸미고, 10여 종의 프리미엄 전통주 메뉴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다른 업체들에 시사점을 준다. 맛과 향을 특화한 막걸리는 한 병에 1만2000원 정도에 팔린다.

셰막 관계자는 “최근 3, 4년 사이에 신사동과 청담동에서 고급 전통주점이 생기기 시작해 강남역에도 한두 곳이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전통주 시장의 변화 조짐에 대해 전통주 연구가인 정헌배 중앙대 교수는 “지방 양조장에서 담근 독특한 전통주들이 주목받는 것은 전통주 시장 활성화에 좋은 신호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통주도 와인처럼 프리미엄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맛 연구뿐만 아니라 술이 만들어진 장소나 술을 만든 장인의 스토리, 역사 등을 접목해 와인처럼 공부하며 마시는 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손현열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
#전통주#강남역 전통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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