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북한 매체를 남쪽에서 본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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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1980년대 대학생 시절 평양의 화보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쭉쭉 뻗은 넓은 도로와 즐비한 고층 아파트, 푸른 하늘이 펼쳐진 평양의 모습은 내가 살던 서울과는 딴판이었다. 당시 서울대 인근의 봉천동은 달동네의 대명사였다. 너비 1m도 안 되는 비좁은 골목 사이로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싸구려 전셋집을 찾다 보면 공동화장실을 써야 했다.

충격은 컸다. 아니,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배운 건 뭐람! 초중고 시절 배운 것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 반공웅변대회에 나갔던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특히 뒤늦게 알게 된 광주학살의 진실과 겹치면서 당시 정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그 시절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운동권’에 빠져든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학 때 가졌던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평등에 대한 강한 집착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가 개혁개방을 선택하고 동유럽이 사회주의권에서 일탈한 지도 꽤 지난 1993년경이었다. 개혁개방 2주년을 맞아 찾은 러시아는 ‘선진 사회주의 종주국’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노동자의 월급이 50달러 안팎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시장은 우리의 1960년대 재래시장을 방불케 했다. 한 60대 할머니는 포도주 한 병을 달랑 들고 길가에서 하염없이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6년 가을 최덕근 영사 살해사건 취재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갔을 때 만난 북한 근로자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옷인지 그물망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허름한 속옷에 파란색 헝겊운동화, 남루한 작업복은 필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우리식 사회주의’라고 우기며 철권 왕조체제를 이어가는 북한에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않다. 이른바 ‘종북(從北)좌익세력’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갈수록 격화하는 남쪽의 사회 모순일 것 같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빈부격차, 고착화하는 신분구조, 국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늘어도 내 수입은 늘지 않는 분배 시스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온 국민의 비전이었던 ‘잘살아보세’가 이제는 ‘(격차를) 잘 늘려보세’로 바뀌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다.

또 다른 주요 원인의 하나는 ‘북한 바로 알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에 대한 개방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전국으로 송출되는 북한의 유일한 방송인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을 필두로 한 ‘백두혈통’ 선전이 방영물의 25%에 이른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땡전 뉴스’는 저리 가라다. 나머지 보도(16%) 드라마(10%) 영화(7%) 등도 대부분 체제선전용이다. 돈을 주면서 일부러 보라고 해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다.

노동신문 또한 마찬가지다. 전체 6개 면 가운데 제1면은 무조건 통치자 동정 및 찬양이다. 2, 3면 역시 대부분 우상화 교육용 보도다. 4면만이 일반 주민이 관심을 가질 행정 경제 기사다. 5면은 남한 뉴스, 6면은 국제 뉴스다. 하루 이틀 치만 펼쳐 봐도 과연 동경할 나라인지, 좇아야 할 체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일각에선 이를 차단해야만 종북 세력을 줄일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국민의 수준을 믿어도 될 듯하다. 우리의 북한 미디어 개방은 북한 정권에 남쪽 미디어 개방을 압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북의 진실을 제대로 알게 하면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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