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맨 오브 라만차’ 이훈진 “죽을 때까지 ‘산초’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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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14일 0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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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를 따라다니는 산초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귀여운 몸짓과 목소리로 “주인님~!”을 외치는 모습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연이 끝난 뒤 “산초가 귀엽더라”며 배우의 이름을 확인하러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극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돈키호테의 부하 산초.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한 명 있다. 바로 배우 이훈진이다. 벌써 5년째 산초 역을 맡으며 노련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동글동글한 몸과 고운 목소리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을 준다. 이제는 ‘산초’하면 머릿속에 생각나는 배우, 이훈진을 만났다.

(이하 이훈진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 5년간 산초 역을 맡았다. 관객들의 사랑과 신뢰를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런 것 같다. 5년 동안 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작품이 올라갈 때마다 나를 생각해주셨다는 거니까. 언제까지 할 거냐고? 죽을 때까지? 하하. 정말 모든 배우가 60~70대가 돼서 ‘맨 오브 라만차’를 해보자고 했다. 진짜 돈키호테와 산초의 나이가 돼서 연기하면 정말 완벽해질 것 같다.”

- 처음 산초를 맡게 된 것은 언제였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만난 김재만 선배가 ‘산초’역을 추천해주셔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처음 오디션 현장에 갔을 때 내 몸집 때문에 몸이 둔할 거라 생각하셨나보더라. 춤을 춰보라고 하셨다. 나처럼 몸이 둥글둥글한 사람이 춤을 추면 얼마나 귀엽다고! 하하. 내 춤을 보신 연출자께서 나를 산초로 뽑아주셨다.”

- 이제는 자다가 일어나도 산초 연기가 나올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며 산초도 점점 진화하고 있는지.

“맞다. 옆구리를 쿡 찔러도 산초 연기가 나올 만큼. 멋모르고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지금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예전에는 산초를 연기했다면 지금은 산초가 된 기분이다. 그만큼 산초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아직 부족한 점은 노래 실력이다. 요즘 체중이 늘어서…. (웃음)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더 좋은 목소리로 무대에 오르고 싶다.”

- 다른 산초들과는 달리 자신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뚱뚱한 몸? 산초와 비슷한 외모? 하하. 어렸을 때부터 몸집이 커서 걸음걸이나 행동 같은 게 늘 산초 같았다. 자연스러운 연기는 몸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게 내 매력이다.”

- 산초 역으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사람들이 티켓을 살 때 산초가 누구인지도 자세히 보는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 누군가는 이런 특징이 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말도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모습이 좋다. 남들보다 제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훤칠하고 잘생기면 재미없지 않나.”

- 오랫동안 산초를 해왔기에 누구보다 ‘돈키호테’에 대해 연구했을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는 이 시대에 살면 굉장히 멋있는 할아버지가 됐을 것 같다. 얼마나 멋있나. 여성들에게 매너도 지키고 용감하고 젊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나.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할아버지가 됐을 것 같다.”

- 실제로 산초와 비슷한가, 돈키호테와 비슷한가.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돈키호테를 닮은 것 같고, 현실을 직시하는 면은 산초와 닮은 것 같다. 현실을 봐가면서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편이다. 하지만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것 같다. 돈키호테와 산초를 짬뽕하면 내가 될 것 같다.”

- ‘맨 오브 라만차’는 인생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년간 작품을 하며 특별히 느낀 점이 있는지.

“마음가짐이 많이 변했다. ‘맨 오브 라만차’는 내 인생을 바꿔놓은 작품이다.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돈키호테와 산초는 서로 상대방을 잘 받쳐줘야 공연이 더 빛날 수 있다. 서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나는 작품이다.”

- 하지만 때때로 배우들은 자신이 빛나길 바라지 않나, 이훈진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는 내가 너무 안 보일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화합이 없는 공연은 잘 될 수 없다. 관객들 역시 배우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공연은 짧게 나와도 연기만 잘 한다면 관객의 기억 속에 남게 되더라. 그걸 깨닫게 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역할도 없었던 나는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3일 동안 바느질을 하며 퉁퉁 부은 손을 보신 교수님께서 무덤지기 역할을 하나 주셨다. 그냥 대사 몇 마디 있는 역이었다.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다. 연극이 마치고 교수님께서 ‘모두 훈진이에게 박수쳐라’고 칭찬해주셨다. 사소한 역할이라도 열심히 한다면 관객들은 그 배우를 바라봐 준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 배우는 어떻게 하게 됐나. 형제가 모두 연기를 한다고 들었다.

“19살 때 극단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악극도 하고 마당극 등 여러 가지를 했다. 내겐 위로 형이 2명이 있는데 큰 형은 배우도 하고 제작도 한다. 둘째 형은 어렸을 때 연기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연기를 배웠다. 우연히 형을 따라간 영화 촬영장에서 단역을 했는데 밤새고 재미있었다. 그게 도화선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서울예대를 들어가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게 제 소원이다. 무대 위에서 한 평생 연기를 하셨던 선배님을 보며 꿈을 키우고 있다. 이 세상 부귀영화보다 끝까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며 살고 싶다.”

- ‘맨 오브 라만차’ 이후 결정된 작품이 있나.

“아직 없다. ‘맨 오브 라만차’에 집중할 생각이다. 원래 ‘벽을 뚫는 남자’를 하려고 했는데 의도치 않게 ‘맨 오브 라만차’와 겹쳐서 할 수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벽을 뚫는 남자’의 듀블 역을 해보고 싶다. 알코올중독자 의사부터 경찰 등 1인 다역인데 매력적이더라. 관계자분들, 추후 연락 부탁드린다. 하하!”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제공|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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