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성택 처형…파란만장한 40여년 정치인생, 처참한 종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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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성택 처형’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30) 노동당 제1 비서의 고모부이자 북한 내 2인자이던 장성택(67)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날인 12일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사형에 처했다고 밝혔다. 죄명은 국가전복음모행위다.

장성택은 197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와 연애 결혼했다. 탈북자등에 따르면, 장성택은 김경희와 1965년 김일성종합대를 같이 다닌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뒤늦게 이를 안 김일성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장성택을 원산경제대로 강제 전학을 보내기도 했지만, 김경희가 헤어질 수 없다고 매달렸고, 오빠인 김정일이 여동생을 도우면서 결혼에 이르렀다.

부마(付魔)가 된 장성택은 청소년사업부를 비롯해 노동당에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78년 동평양의 외교부 초대석에서 측근을 모아 연회를 벌이다 김정일의 눈 밖에 나 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김정일의 용서로 다시 정계 복귀할 수 있었다. 1986년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됐고 1989년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2년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았고 1995년 권력의 핵심부인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다.

2002년 1월 국가예산을 횡령한 혐의로 사회안전부 처벌을 받으며 다시 고비를 맞았다. 당시 장성택은 김경희와 강원도에서 요양하며 유배 생활을 보냈다. 2004년에는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이유로 모든 업무가 정지됐고 측근들도 숙청됐다.

김일성의 장남 김정남과 가까웠던 장성택은 고영희 사망 후인 2006년 재기해 권력의 중심에 다시 올랐다. 이어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 후계구도가 본격화되면서 장성택의 입지는 더 단단해졌다. 2008년 8월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명실상부한 2인자 위치에 올랐고, 이듬해 김 위원장에게 김정은 후계자 낙점도 직접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6월 국방위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을 맡았고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2010년 9월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등 3개의 직함을 동시에 받았다.

김정은의 후견인이자, 명실상부한 섭정(攝政)의 지위에 앉은 장성택은 북한 실세로 급부상했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밍(明)보는 지난해 8월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놓고 "북한의 섭정왕(攝政王) 장성택이 방중했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그로부터 1년 4개월 만에 '반혁명 종파분자' 죄명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향후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에게까지 숙청의 여파가 미치느냐 역시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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