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미]나이 들면 버려야 할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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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주위 사람들로부터 ‘점점 젊어지시네요’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벌써 노년기에 접어든 것이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화장실에서 나올 때 바지 지퍼를 올리는 것도 종종 잊어버린다. 더 늙으면 바지 지퍼 여는 것을 잊게 된다.”(마빈 토카이어 ‘탈무드 잠언집’)

탈무드는 또 인간의 생애를 7단계로 설명했다. 한 살은 임금님. 모든 사람들이 임금님 모시듯 비위를 맞춘다. 두 살은 돼지. 진흙탕 속을 마구 뒹군다. 열 살은 새끼 양. 웃고 떠들고 마음껏 뛰어다닌다. 열여덟 살은 말. 다 자라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결혼하면 당나귀.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한다. 중년은 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개처럼 구걸한다. 노년은 원숭이. 어린아이와 똑같아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개처럼 살다 원숭이처럼 늙는 것은 서럽다. 그 서러움이 서운함 되고 서운함은 노여움 되고 소신은 아집이 된다. 마이크 잡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말이 많아질수록 주위에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오죽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을까.

‘논어’ 자한 편에서 ‘공자는 4가지가 완전히 없었다(자절사·子絶四)’고 했다. 4가지란 의(意), 필(必), 고(固), 아(我)다. 여기서 ‘의’는 근거 없는 억측이요, ‘필’은 무리하게 관철시키려는 자세요, ‘고’는 융통성 없는 완고함, ‘아’는 오직 나만이라는 집착으로 풀이된다. 이 4가지가 없어야 성인이라 하니, 범인으로서 이를 끊는 일이 또 얼마나 어려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성인의 경지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새해에는 ‘입을 닫는’ 연습이라도 해볼 일이다.

나이 들면 버려야 할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배워야 할 것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건배사 중에 ‘껄껄껄’이 있다. 몇 개의 서로 다른 풀이가 전해지지만 ‘좀 더 사랑할걸, 좀 더 즐길걸, 좀 더 베풀걸’이 으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참을걸’이다. ‘참으세, 베푸세, 즐기세’를 엮어 ‘인생은 껄껄껄, 다함께 쎄쎄쎄’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렇다. 죽기 전에 ‘좀 더 열심히 일할걸’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더 즐기고 사랑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두 손을 꼭 쥐고 있지만, 죽을 때는 반대로 두 손을 편다. 태어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움켜잡아 가지고 싶지만, 죽을 때는 가진 것을 다 내주어 빈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즐기는 법을 배우고, 베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 이런 말들이 다 잔소리처럼 들리는 청춘도 있을 것이다. 바지 지퍼 올릴 힘조차 없거나 흘리는 게 많아 식탁 위가 지저분해질 때쯤에나 걱정할 이야기라고 코웃음 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과 노년의 경계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영국 ‘경영학의 구루’로 불리는 찰스 핸디가 B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럭비팀 감독에게 그가 물었다. “(팀을 이끌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입니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혈기 넘치는 선수들에게 뛸 날이 서른 이전에 끝난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고, 다른 직업을 위한 재훈련을 받도록 유도하는 일입니다.”(찰스 핸디 ‘포트폴리오 인생’) 하루라도 빨리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배우는 게 청춘의 시간을 연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살 더 먹으니 잔소리가 길어졌다.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khmzip@donga.com
#나이#청춘#사랑하는 법#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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