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 마니아 4인 “보기만 하다 직접 기획, 꿈만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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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음악 박람회 ‘레이블마켓’ 공연기획 맡은 슈퍼마니아 4인

공연기획자로 변신한 인디 음악 팬 4명이 자신들의 소장품(사인 음반, 사인북, 사인픽, 공연 입장권과 팔찌)을 펼쳐 보였다. “일부만 들고 나왔어요. 다 합치면 서교동 거리를 덮을 정돈데…우리 집에서 찍을걸 그랬나?” 왼쪽부터 키치킴, 횬주, 딩손, 진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공연기획자로 변신한 인디 음악 팬 4명이 자신들의 소장품(사인 음반, 사인북, 사인픽, 공연 입장권과 팔찌)을 펼쳐 보였다. “일부만 들고 나왔어요. 다 합치면 서교동 거리를 덮을 정돈데…우리 집에서 찍을걸 그랬나?” 왼쪽부터 키치킴, 횬주, 딩손, 진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읽으면 4명의 팬이 추천한 인디음악 뮤직비디오를 보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읽으면 4명의 팬이 추천한 인디음악 뮤직비디오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교동 일대 인디 음악계에는 웬만한 뮤지션보다 지명도가 높은 ‘유명 팬’들이 있다. 횬주(본명 최현주·30대이나 정확한 나이는 밝히지 않음), 초딩손(또는 딩손·박효정·27), 진수(이진수·22), 키치킴(김현수·23)이다.

횬주는 최근 5년간 인디 음악인들에게서 500회 이상의 사인을 받았다. 공책으로 8권 분량이 넘는다. “제가 사인북을 내미니까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 뮤지션도 있어요. ‘영광입니다!’”

딩손은 공연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린다. 그가 올린 영상만 1000편 이상이다. 키치킴은 공연 때마다 특이한 패션으로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여 객석은 물론이고 무대 위 음악인들의 이목까지 집중시킨다. 진수는 블로그 활동으로 모자라 인디 음악 종사자를 인터뷰한 잡지 ‘아워 페이버릿 싱스’도 펴냈다.

객석을 주름잡던 이들은 최근 공연 기획자로 변신했다. 4인의 팬은 제7회 KT&G 상상마당 레이블마켓(19일∼내년 2월 4일)의 주요 프로그램인 ‘환상의 라인업’(21일과 28일, 내년 1월 4일과 11일·무료·02-330-6223·sangsangmadang.com) 큐레이터로 4편의 공연을 기획했다.

레이블마켓은 상상마당이 2007년부터 매년 그해의 인디 음악계를 돌아보고 더 많은 음반사와 음악가를 소개하자는 취지로 마련해온 박람회다. 상상마당은 “누구보다 공연을 많이 보는 이들이어서 평론가나 기획자 못지않은 시야를 갖췄다고 보고 기획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9일 밤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6층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좋아서 봐온 공연을 직접 기획하니 꿈만 같다”고 했다. 4명이 각각 꼭 한 무대에서 보고 싶은 두 팀을 엮었다. 횬주는 독특한 세계관과 무대 매너를 지닌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진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이아립과 트램폴린, 키치킴은 거친 록 밴드 ECE와 파블로프, 딩손은 춤추기 좋은 음악을 하는 밴드 로큰롤라디오와 위댄스를 묶어 무대에 세운다.

이들은 2005년 밴드 피아와 바세린의 합동 콘서트(딩손),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2008년 크리스마스 공연(횬주)처럼 접신(接神) 같은 뜨거운 순간을 겪은 이후 3∼9년간 인디 음악 공연장을 출석 체크하듯 드나들었다. 딩손은 “1년에 90∼130일은 공연장에 간다”고 했다.

이들은 “팬이라고 해서 접근성이 좋은 인디 음악인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공연 관람, 사진 찍기, 사인 받기. 이 이상 나가지 않아요. ‘가수님’들은 무대 위에서가 제일 멋있거든요.”(횬주) “환상을 유지하는 게 팬과 음악인, 서로를 위해 좋죠.”(진수)

아이돌 팬덤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쪽 ‘활동’은 얼마나 힘든데요. 공연 티켓 하나 구하고 싶어도 전 세계 팬과 경쟁하고, 밤새워야 하는데…. 여긴 공연장에 한 시간 일찍 도착하는 걸로 충분하거든요.”(일동)

각자 가장 좋아하는 팀은 제각각이지만 쾅프로그램, 악어들, ECE 같은 새롭고 생소한 팀을 계속 발굴하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팬 활동’이다. 수려한 외모나 입담보다 음악과 세계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든 없든 할 말은 하는 태도….”(키치킴) “자발적으로 유행을 만들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 일단 레이블마켓 무료 공연에 와보세요!”(진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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