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자궁 같은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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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문화부 차장
이진영 문화부 차장
김수근(1931∼1986)과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 한국과 멕시코에서 동갑내기로 태어난 세계적인 건축가 두 사람이 지난해 가을 한국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레고레타가 제주에 지은 갤러리 건물(2009년)이 건축주가 바뀌면서 철거 위기에 놓이자 멕시코 정부가 “멕시코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며 한국 정부에 철거를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김수근이 설계한 캐나다 몬트리올 엑스포 한국관(1967년)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소식이 날아든 것도 그 즈음이었다. 엑스포 건물은 행사가 끝나면 철거되지만 몬트리올 시가 허물기엔 너무 아깝다며 영구 보존해오던 건물이었다.

자기 나라 건축가가 나라 밖에 남겨놓은 작품까지 챙기는 외국과 달리 한국 정부는 해외에 진출한 제 건축은커녕 국내에 남아 있는 수작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물로 꼽히는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올해 초 공간그룹의 부도로 매물로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최근 미술계 큰손이 사들였다. 문화재청이 늦게나마 등록문화재 지정에 착수하고, 새 주인도 공간사옥을 원형대로 보존하겠다고 공언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건물은 보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1970, 80년대 떠들썩했던 공간사옥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담쟁이 덮인 예쁜 건물보다 그 속에서 작동했던 소프트웨어에 주목한다. 공간사옥은 전후 폐허 속에서 문화예술계 스타와 담론을 키워내는 자궁 같은 곳이었다.

공간사옥엔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갈 건축가 650명을 배출해낸 설계사무실 말고도 전시장인 공간화랑과 공연장인 공간사랑,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카페와 마당이 있었다. 최순우 백남준 이어령 황병기 같은 문화계 엘리트들에겐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건축가 김원은 “공간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한국의 미래를 그리는 연구소였다. 비무장지대(DMZ) 자연공원화와 여의도개발계획 이후 서울의 발전방향에 대한 밑그림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회고한다. 문화계 비주류들에게도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김덕수 사물놀이와 공옥진의 병신춤, 무용가 홍신자가 이곳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공간의 문화 실험을 도운 것이 국내 최고(最古)의 예술전문지 ‘공간(SPACE)’이다. 정치인 김종필이 격려금으로 내놓은 100만 원짜리 수표 2장을 밑천으로 김수근이 1966년 11월 창간했다. 건축전문지 ‘도무스’가 전후 이탈리아의 디자인 르네상스를 견인했듯, ‘공간’은 문화 불모지에 국내외 문화계 경향을 소개하고 신예 작가를 발굴하며 문화계 담론을 주도했다.

공간사옥의 새 주인은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했고, 김수근문화재단은 13일 그를 만나 “건축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공간사옥은 고급 컬렉션을 전시하고, 건축계의 과거를 보여주는 죽은 자를 위한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통과 이단이 충돌하고 다양한 장르가 부딪치는 가운데 변화의 씨앗을 잉태해 새로운 문화를 키워내는, 산 자를 위해 들썩이는 공간이 돼야 한다.

생전 자신의 손을 예인(藝人)을 건져 올리는 조막손이라 부르며 자신의 역할은 바늘구멍을 뚫는 것이라고도 했던 르네상스인 김수근. 부인이 살 집 한 칸 남기지 못하면서도 작은 손으로 문화의 바늘구멍을 크게 뚫어놓고 간 그를 따라 이제 우리가 그 바늘구멍에 실을 꿸 차례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리카르도 레고레타#김수근#건물#건축#공간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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