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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상투적인 판타지 모조리 들어내 현실을 직시하라는 메시지 ‘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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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상투적인 판타지 모조리 들어내 현실을 직시하라는 메시지 ‘슬쩍’

동아일보입력 2013-12-05 03:00수정 2013-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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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라이선스 뮤지컬 ‘위키드’ ★★★☆
뮤지컬 ‘위키드’의 취약점은 극장이다. 배우들의 열창, 흡인력 높은 스토리가 비좁은 객석, 공간감 부족한 무대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2시간 45분 내내 애쓰는 듯 느껴진다. 설앤컴퍼니 제공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최근 방영분 도입부. 하숙집 주인 부부의 늦둥이 아기를 남자 하숙생들이 번갈아 안고 어른다. 줄곧 얌전하던 아기가 문득 울음보를 터뜨린다. 포대기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생은 하숙생 중 유일하게 꽃미남이 아닌 ‘삼천포’다.

인격을 형성하는 건 부단한 내적 성찰과 수양일까. 뮤지컬 ‘위키드’는 “현실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녹색마녀 엘파바는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피부색과 가정환경을 스스로 택하지 못했다. 그가 태어나 접한 부모의 첫 반응은 환희가 아닌 경악이었다.

얼핏 초반부만 볼 때 관객을 붙드는 미끼는 ‘빨강머리 앤’과 ‘캔디캔디’ 스토리다. 원작소설 ‘위키드’는 95년 앞서 출간한 ‘오즈의 마법사’ 속 단선적인 악당 캐릭터 위에 앤과 캔디를 겹쳐 올렸다. 그로 인해 엘파바의 녹색 피부는 빨강머리와 주근깨의 변주가 됐다.


녹색마녀는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또 참은 끝에 테리우스 빼닮은 반항아 피에로의 품에 안겨 콩닥콩닥 승전고를 울리게 될까. ‘위키드’를 비범한 이야기로 만든 것은 뮤지컬 시장의 핵심 고객인 젊은 여성들이 바랄 만한 흐름을 대담하게 외면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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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만난 한 여성 관객은 이 작품에 대해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두 번 보니 유치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현란한 무대와 의상에 대한 감탄을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할 때 관객의 감흥은 뚜렷이 갈릴 수밖에 없다. 무대에 오른 인물 중 누구도 온전한 행복을 얻지 못한다. 세상살이가 대개 그렇듯, 후련한 복수나 사필귀정 보상도 없다.

귀족 의상과 샹들리에, 헌신적 사랑을 선사하는 치명적 매력의 남자주인공, 판타지 로맨스를 간접 경험하는 카타르시스…. 어느 것도 없다. ‘위키드’는 250억 원을 들여 만든 판타지 위장을 걸친, 지독한 현실세계 이야기다.

험상궂은 인상 탓에 품속 아기가 울 때, 피부색이 예쁘지 않아 놀림감이 될 때 ‘푸른 들을 웃으면서 달려보자’ 노래하는 캔디의 성인군자 마인드는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박또박 당당하게 편견에 홀로 맞서라고, 가장 소중한 사랑과 우정도 그 싸움을 도와줄 수 없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그래도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엘파바는 말한다.

첫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어서인지 무대 디테일은 완벽함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엘파바에게 자신을 투사한 듯한 옥주현의 노래가 모든 흠결을 눈감도록 만든다. 어려운 노래를 담담히 쉬운 노래처럼 부르는 것. 현실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몇몇 마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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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리구일로 연출, 박혜나 정선아 김보경 이지훈 남경주 김동현 출연. 2014년 1월 26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4만 원. 1577-336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위키드#녹색마녀#한국어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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