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발파-소음-진동 NO… TBM 하나면 한강하저터널도 뚝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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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파는 '기계 두더지' TBM
이달 3일 오전 10시 서울 지하철 9호선 3단계 연장공사 구간인 석촌역 사거리.

중앙차로를 막은 간이 벽 안에 크레인 한 대만 덩그러니 있을 뿐, 예상했던 정신없는 공사장의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작은 문 하나를 통해 들어간 지하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수많은 붉은색 철골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곳을 지나 마침내 지하 27m에 있는 굴착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터널 끝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이 땅 파는 기계 두더지 ‘TBM’이에요.”

안내를 해준 권우형 삼성물산 건설부문 과장이 말했다.

성인 남성의 키 세 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원통형 기계인 TBM은 마치 영화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커다란 엔진 같았다.

○ 후진 없는 기계 애벌레

공사 구간은 9호선 33번째 정거장이 생기는 곳으로 바로 위에는 백제 초기 적석총과 몽촌토성 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진동으로 인해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지반이 약해져 내려앉지는 않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을 읽었는지 권 과장은 웃으며 “TBM 공법은 화약 발파 공정이 없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이 생기지 않아, 발밑에서 거대한 터널 공사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터널 공사를 할 때 수많은 중장비와 인력이 투입돼 발파, 잔해 청소, 콘크리트 타설 공정을 각각 담당했다. 그렇지만 ‘기계 두더지’ TBM은 이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처리한다. 1803년 영국의 선박기사 마크 이점바드 브루넬이 나무를 뚫고 들어가는 ‘배좀벌레조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무나 목재를 파먹는 배좀벌레조개는 굴을 파면서 깎아낸 나무를 뒤로 보내고 체액을 분비해 구멍을 지지한다.

기계 앞쪽에는 ‘커터헤드’가 1분당 2회전하면서 암반을 파 나간다. 커터헤드에는 동그란 피자 칼처럼 생긴 날카로운 커터들이 달려 있어서 TBM이 파낸 면에는 커터가 누르고 지나간 동심원이 여러 개 생기는데, 커터와 커터 사이에 있는 암반에는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해 균열이 생겨 부서지는 것. 파내진 암반과 토사는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입구로 운반된다.

TBM은 유압잭을 이용해 암반을 헤치며 앞으로 나간다.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는 유압잭은 개당 200t의 힘을 낼 수 있다. 1.5m 파고 전진할 때마다 애벌레가 움직이듯, 뒤쪽 기계장치를 앞으로 끌어온다. 이때 생긴 빈 공간에는 미리 만들어뒀던 폭 1.5m의 아치형 벽 조각을 이어 붙여 터널을 만든다. 벽 조각을 붙이고 나면 터널 지름이 작아지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굴착을 못하더라도 후진할 수 없다. 장수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오가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긴 드릴을 먼저 투입해 지반 상태를 확인한 뒤 굴착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 韓, TBM 원천 기술 보유 7대 국가

2016년 완공 예정인 스위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을 비롯해 세계 10대 최장 터널 절반이 TBM으로 굴착됐다.

국내에서도 1984년 TBM 기계 굴착이 처음 도입됐지만, 발파 공법(NATM)에 밀려 활용률이 1% 정도에 불과했다. 최근 지하공간 활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안전하고,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한 TBM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대우건설의 지하철 분당선 왕십리∼선릉 구간 한강하저터널 공사, 인천공항철도와 7호선 연장 구간에도 TBM 공법이 적용됐다.

이에 따라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독일, 일본, 미국, 캐나다,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TBM 원천 기술을 보유한 세계 7번째 나라가 됐다. 전남 여수 화력발전소 해저터널 공사에는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된 커터헤드가 쓰이기도 했다.

장수호 박사는 “최근 터널이 길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다양한 커터를 장착해 어떤 종류의 지반이든 파낼 수 있는 커터헤드를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건설 현장에서 맹활약하는 다양한 중장비에 대한 정보를 ‘과학동아’ 10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우아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wooyoo@donga.com
#TBM#거대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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