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판사들 “독재시절 인권외면 반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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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희생자들에게 공식 사과

칠레 판사들이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 시대(1973∼1990년)에 자행된 사법부의 ‘인권 외면’에 대해 국민들에게 뒤늦게나마 사과했다. 피노체트는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 1990년까지 장기 집권하며 대량 학살과 인권 탄압을 저질렀다. 2000년부터 가택연금 중이던 그는 91세 때인 2006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칠레 전국판사협회는 쿠데타 40주년을 맞아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과 칠레 사회에 용서를 구할 때가 왔다”고 발표했다고 영국 BBC 등이 4일 보도했다. 1969년 출범한 칠레 판사협회에는 판사 약 1000명이 소속돼 있다.

판사협회는 “당시 사법부, 특히 대법원이 기본적 인권 지킴이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국가 폭력 희생자 보호에 모두 실패했다”고 밝혔다. 칠레 법원은 피노체트 독재 시대에 국가에 의해 납치 살해된 가족과 친척을 찾아달라는 신청 5000여 건을 단지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판사협회는 “사법부가 군사독재 시절 박해당한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뭔가를 더 했어야 했고, 할 수도 있었다”고 시인했다. 또 “당시 곤경에 빠진 희생자들이 사법부에 개입을 요청했지만 사법부는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인권의 최후 보루’ 역할을 포기하고 ‘독재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자기반성이다.

칠레 정부의 과거사 조사에 따르면 피노체트 집권 17년간 인권 탄압 피해자는 4만여 명, 사망 및 실종자는 45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노체트 실각 이후 고소 고발이 잇따랐지만, 피노체트는 사망할 때까지 가택연금 외에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중도우파 국민혁신당 출신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판사들의 대국민 사과에 앞서 지난달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역사의 분명한 사실이며, 이번 쿠데타 40주년은 반성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노체트 측근과 그 후손이 속해 있는 보수우파 독립민주연합당의 에르난 라라인 전 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피노체트 독재 시절 당의 행동을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칠레 사회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칠레#피노체트#아우구스토 피노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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