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자금 감시소홀 악용… 미성년 아들에 10억 ‘전세 증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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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세청, 일부 자산가 ‘과세 사각지대’ 불법행위에 칼 빼들어

국세청이 5일 고액 전월세 세입자 56명에 대해 대대적인 자금 출처 조사에 나선 것은 ‘과세 사각지대’였던 전월세를 통한 일부 자산가들의 변칙 증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무당국의 규제가 촘촘한 주택 매매 시장과 달리 전월세 시장은 그동안 당국의 감시가 소홀했고 이를 틈타 고액 자산가들의 불법 행위가 늘자 칼을 댄 것이다.

○ 소득 없는 자산가 자녀가 주요 대상

국세청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이번에 자금 출처를 검증받는 고액 전월세 세입자들의 구체적인 탈법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세청은 과거 조사에서 드러난 고액 전월세 세입자들의 변칙 증여와 소득세 탈루 수법이 이번에도 거의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나 무직자가 10억 원 이상 고액 전세나 1000만 원짜리 월세를 산다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떼먹은 소득세로 가족에게 고액 전세를 얻어주는 사례가 다수인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국세청이 이날 공개한 과거 불법 유형에 따르면 40대 남성 A 씨는 자산가인 70대 아버지로부터 부동산과 현금 등 수십억 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A 씨는 이 중 일부를 18세 아들에게 현금으로 준 뒤 미성년자인 아들 명의로 10억 원짜리 고급 아파트 전세를 얻어줬다. A 씨의 아들은 소득이 없는데도 제주도에 땅(공시지가 4400만 원)도 샀다. 국세청은 A 씨가 자식에게 10억 원이 넘는 현금을 증여한 혐의를 잡고 아들에게서 증여세 수억 원을 추징했다.

○ 중저가 전세는 조사 대상 안 돼

이번에 조사 대상자는 전세는 보증금 10억 원 이상, 월세는 월 1000만 원 이상의 고액 세입자로 한정됐다.

따라서 서민과 사회 초년생이 많이 거주하는 3억 원 이하 전세와 월 수십만 원을 내는 월세 거주자는 국세청의 조사 대상이 아니다.

결혼하는 자녀들이 전셋집을 얻을 때 부모가 관행적으로 수천만 원 정도를 보조해 주는 경우도 국세청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세청 훈령에 따르면 전세금은 ‘증여 추정 배제’ 규정상 ‘기타 자산’으로 분류돼 있다. 근로소득이 있는 경우 30∼39세는 전세금 5000만 원, 40세 이상은 전세금 1억 원까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원칙적으로 조사 과정에서 탈세 제보 등이 접수돼 증여한 사실이 발견되면 증여 추정 배제 원칙과 상관없이 3000만 원(과세표준 기본공제액)을 넘는 액수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세무 전문가들은 국세청의 조사가 고액 전월세 세입자뿐 아니라 부동산 임대업자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PB센터의 한 세무사는 “지금까지 고액 전세는 일종의 ‘과세 사각지대’였는데 부유층이 받는 심리적 타격이 제법 클 것”이라며 “조사 대상이 10억 원 이상의 전세에서 6억∼7억 원 이상 전세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신수정 기자 jefflee@donga.com
#전월세#탈세#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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