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기만? 홈쇼핑표 '최신' 노트북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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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4일 18시 34분


코멘트
“이런 좋은 제품이 겨우 XXXXX원!”
“무이자 할부 24개월도 가능합니다!”
“지금 주문이 폭주하고 있으니 서두르세요!”

TV홈쇼핑을 보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청산유수와 같은 쇼 호스트의 달변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신용카드를 꺼내고 전화 수화기를 들게 된다. 물론, 물건을 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가끔은 ‘저렇게 소개를 해도 될까?’ 싶은 때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는 제품의 성능이나 유용성을 판별하기 힘든 PC(데스크탑, 노트북)의 판매방송을 볼 때 특히 그러하다. 최근 방송된 TV홈쇼핑의 일부 장면을 인용해 이를 곱씹어보자.

3세대 아이비브릿지가 최신 프로세서?

지난 8월 4일, 롯데홈쇼핑에서는 삼성전자의 아티브북2(NT270E5E 시리즈 중 일부)를 판매한 바 있다. 해당 방송에서 쇼 호스트는 노트북의 성능을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텔의 가장 최신 기반은 제3세대 아이비브릿지거든요? CPU(프로세서)를 보시려면 3세대 아이비브릿지인 것을 확인하세요! 오늘 최고 사양을 가져가세요!”


애석하게도 3세대 아이비브릿지는 인텔의 최신 프로세서가 아니다. 지난 6월에 이미 4세대 제품인 ‘하스웰’이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4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 하스웰은 전작에 비해 그래픽 구동능력이 향상되고 전력 소모가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해당 방송의 쇼 호스트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기보단 정말 몰라서 저렇게 소개를 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 노트북에 탑재된 프로세서의 구체적인 모델명은 ‘펜티엄 2177U’다. 참고로 요즘 팔리는 인텔의 주력 프로세서 브랜드는 고급형인 ‘코어 i7’과 중급형인 ‘코어 i5’, 그리고 보급형인 ‘코어 i3’다. 펜티엄은 코어 i3보다도 하위 등급이다. 물론 이보다도 성능이 낮은 ‘셀러론’, ‘아톰’ 등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최고 사양’이라 칭하기엔 조금 민망한 것이 사실이다.

외장그래픽카드 달면 인터넷이 빨라져요?

“외장형 지포스 그래픽카드 1GB가 들어갑니다. 끊김 없는 화면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죠! 외장 그래픽카드 성능이 없으면 쇼핑몰 같은 곳에서 그림이 이렇게 빨리 뜰 수가 없죠! 그렇지 않으면 ‘X표’나 ‘로딩중’이라고만 나와서 답답할 거에요!”

참고로 해당 제품에 탑재된 GPU(그래픽카드의 핵심칩)는 ‘지포스 710M’이다. 지포스 700 시리즈 중에서 가장 등급이 낮은 저가형 모델인데, 이 방송에서는 그래픽용 비디오메모리가 1GB라는 것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비디오메모리가 넉넉하면 고해상도의 3D 게임을 구동하는데 유리하다. 다만, GPU 자체의 구동능력이 떨어지면 고해상도 그래픽을 구동하더라도 속도저하가 심각하므로 고용량 비디오메모리의 의미가 없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저가형 GPU에 고용량 비디오메모리는 거의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외장형 그래픽카드를 달면 인터넷 이미지를 표시하는 속도가 빨라질까? 이건 2D 그래픽조차 제대로 표현하기 버거웠던 90년대 이전의 PC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현대의 그래픽카드는 거의 전적으로 3D 그래픽을 구동하는데 성능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CPU나 메인보드에 딸려있는 내장그래픽만으로도 인터넷 이미지를 빠르게 구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경우엔 차라리 메인메모리(RAM)의 용량이나 인터넷 회선의 속도가 훨씬 중요하다.

‘쿼드코어’면 이야기 끝난 거에요?

그런데 한 군데만 이러는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12일, CJ오쇼핑에서도 삼성전자의 아티브북9 라이트(NT905S3G 시리즈 중 일부)를 판매하면서 현란한 입담을 선보인 바 있다.

“저가 라인업에는 좋은 CPU를 못 넣습니다. 이 제품은 코어가 4개입니다! 쿼드코어의 위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얇은 노트북에 쿼드코어라면 150 ~ 190만 원 생각하실 거에요. 그런데 이건 가격이 월 4만 4,167원(무이자 24개월)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쿼드코어’면 이야기가 끝일까? 물론 프로세서의 코어가 많으면 고성능을 낼 수 있으며, 고급형 PC에 쿼드코어 CPU가 주로 들어가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PC의 핵심이 CPU라면 자동차의 핵심은 엔진이다. 자동차의 엔진은 기통 수가 높을수록 고급으로 치는데, 고급 차에는 주로 6기통 엔진을 얹는다. 이를테면 가격이 7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차량인 ‘에쿠스 3.8’은 6기통 엔진을 갖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6기통 엔진이 들어간 차량이 모두 에쿠스와 같은 급은 아닐 것이다. 가격이 에쿠스의 절반 정도인 ‘그랜저 3.0’에도, 2,000만원 좀 넘는 가격에 팔리던 ‘토스카 2.0’에도 6기통 엔진이 탑재된 바 있다. 그렇다고 그랜저나 토스카의 엔진을 에쿠스의 그것과 같은 급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CPU의 코어 역시 그러하다.

이날 판매된 아티브북9 라이트에는 AMD의 쿼드코어 프로세서가 탑재되어있다. 정확한 명칭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1.9GHz의 최대 클럭(동작속도), 그리고 라데온 HD 8250G GPU를 갖춘 것으로 보아 이는 AMD A6-1450 프로세서와 동일모델, 혹은 이와 유사한 성능을 갖춘 모델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A6-1450의 실제 연산능력은 인텔의 보급형 듀얼코어 프로세서인 펜티엄이나 셀러론과 유사한 수준(PASSMARK CPU 부문 기준)이다.

물론,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AMD의 프로세서라고 무조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A6-1450 프로세서를 갖춘 타사의 노트북이 인터넷 최저가 기준 60만원 남짓에 정도에 팔리고 있는데, 이 정도면 ‘가성비’ 측면에서 아주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아티브북9 라이트의 가격은 100만 원에 상당한다. 게다가 이 방송에서는 ‘이런 제품에 쿼드코어라면 대개 150~190만원 정도(코어 i7급 노트북의 가격)를 생각할 것’이라는 멘트까지 은근히 덧붙이고 있다.

‘한없이 거짓말에 가까운 사실’에 주의해야

PC의 가격이라는 것이 꼭 프로세서의 성능만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이나 부가기능, 그리고 브랜드나 사후지원 등의 요소까지 고려해본다면 낮은 성능의 노트북을 비싸게 팔 수도 있다. 그리고 광고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과장이나 미사여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정보력이 부족한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으며, 만에 하나 의도적으로 이런 오해를 증폭시킨다면 이는 상도에 어긋남이 분명하다. ‘한없이 거짓말에 가까운 사실’이 난무하고 있는 ‘TV홈쇼핑표 PC’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업체들의 각성이 시급하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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