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에 외풍 막으려 안간힘 썼지만 역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6일 12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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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배경과 관련해 숱한 추측을 낳은 양건 감사원장은 26일 "개인적 결단"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양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이임식 이임사에서 "이제 원장 직무의 계속적 수행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이르렀다"며 사퇴는 스스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양 원장은 "그동안 어떤 경우에도 국민들께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특히 감사업무 처리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덮어버리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긴다"고 강조했다.

양 원장은 이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감사업무의 최상위 가치는 무어니 해도 직무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며 "현실적 여건을 구실로 독립성을 저버린다면 감사원의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밝힌 것.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직무 독립성에 어긋나는 외부의 압력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 원장은 이어 "재임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며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여러분께 맡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양 원장은 2011년 3월 감사원장에 임명됐으나 임기를 1년 7개월 앞두고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다.

양 원장의 이임사와 관련해 민주당은 청와대의 압력 탓에 양 전 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고 몰아붙였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재임 중 독립성을 강조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양 전 원장의 이임사는 독립성을 훼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음을 고백한 것"이라며 "그 손의 끝이 청와대에 있음을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와대는 이제라도 감사원의 정치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치 감사위원 임명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대선 캠프 출신인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선임을 둘러싼 양 원장과 청와대의 갈등을 지적한 것이다.

외압의 주체로 지목받고 있는 청와대는 손사래를 쳤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새 정부에서는 양 감사원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유임을 결정했지만 자신의 결정으로 스스로 사퇴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된 양 전 원장을 유임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청와대가 감사원에 외압을 행사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양건 감사원장 이임사 전문▼

오늘 감사원을 떠납니다. 지난 2년 수개월간 함께 수고하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헌법이 보장한 임기동안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믿어왔습니다. 이 책무와 가치를 위해 여러 힘든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고 다짐해왔습니다. 헌법학자 출신이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원장 직무의 계속적 수행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개인적 결단입니다.

그동안 어떤 경우에도 국민들께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특히 감사업무 처리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덮어버리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감사업무의 최상위 가치는 뭐니뭐니 해도 직무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입니다. 현실적 여건을 구실로 독립성을 저버린다면 감사원의 영혼을 파는 일입니다. 재임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합니다.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여러분께 맡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습니다.

공직을 처음 맡았을 때 품었던 푸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제 사사로운 삶의 세계로 가려 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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