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끝없이 달린다, 눈부신 자유를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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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 온 유어 마크

‘이웃집 토토로’와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지휘하에 펼쳐지는 몽환적인 세계관과 초현실적인 묘사는 지브리를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정점에 올려놓았습니다.

지브리의 수많은 대표작들 중에서도 제가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꼽는 작품은 길이 7분이 채 안 되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입니다. 일본 남성듀오 ‘차게 앤드 아스카(CHAGE and ASKA)’가 1995년 발표한 노래 ‘온 유어 마크(On Your Mark)’에 지브리의 영상을 입힌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굉장했죠. 뮤직비디오란 그저 가수가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는 영상에 불과했던 시절의 얘깁니다.

작품 배경은 미래도시. 반군 척결 작전에 투입된 두 경찰관은 날개 달린 한 소녀를 발견하고 연구소로 넘깁니다. 이를 금세 후회하고는 소녀를 구출해 내기로 마음먹고 연구소를 습격합니다. 경찰들은 추격을 뿌리치며 소녀를 차에 태우고 끝없이 달립니다. 지붕이 없는 차에 매달려 있던 소녀는 이내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갑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차는 이탈리아 피아트그룹 산하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인 ‘알파로메오’의 노란색 1954년형 줄리에타 스파이더. 1.3L급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74마력, 최고 시속 156km를 내는 모델로 최근 나오는 차들에 비해 성능은 부족하지만 외관만큼은 감탄사가 나옵니다. 이 유선형의 아름다운 외관은 자동차 디자인 전문업체인 피닌파리나가 솜씨를 부린 겁니다. 이전까지 디자인 외주를 맡는 데 주력하던 피닌파리나는 이 차의 설계뿐 아니라 생산까지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지브리는 치밀한 묘사로 허구의 세계에 사실감을 불어넣는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극 중 등장하는 자동차나 항공기 묘사도 대단히 사실적입니다. 영상 속 잠시 비칠 뿐인 줄리에타 스파이더는 실제 차를 애니메이션 속에 녹여낸 듯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날개 달린 소녀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표현하기에는 최고의 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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