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여기는 모스크바] “난 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요” 50대 러시아인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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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16일 07시 00분


바체슬라프 이바넨코(오른쪽)와 그의 아들. 모스크바(러시아)|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바체슬라프 이바넨코(오른쪽)와 그의 아들. 모스크바(러시아)|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남자 경보 50km 우승 이바넨코 한국선수단에 인사
이념 갈등의 시대에 소련대표로 출전 역사에 한 획


13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스타디움 인근에선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경보 20km 경기가 펼쳐졌다. 한국선수단 임원들은 도로 근처에서 이 종목에 홀로 출전한 전영은(부천시청)을 응원했다. 이 때 한 러시아인이 한국선수단을 찾아왔다. 이어 자신을 “1988서울올림픽 남자 경보 50km 금메달리스트”라고 소개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이름은 바체슬라프 이바넨코(52)였다.

시베리아 케메로보주 출신의 이바넨코는 서울올림픽 남자 경보 50km에서 3시간38분29초의 올림픽기록으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겼다. 1932년 LA대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에 포함된 남자 경보 50km에서 소련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바넨코의 올림픽기록은 이후 20년간 깨지지 않았다.

올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루즈니키스타디움은 1980모스크바올림픽에서 주경기장으로 쓰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치적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불참했고, 한국선수단 역시 이 스타디움을 밟지 못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국가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LA올림픽을 보이콧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소련의 서울올림픽 출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무너져버린 이념의 벽. 한국선수단은 루즈니키스타디움을 밟았고, 이바넨코는 그런 한국선수단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한 1988년의 서울을 기억하는 듯, 감격에 젖었다. 이어 “유소년 경보 3km 챔피언”이라고 자신의 아들을 소개했다. 한때 경보 세계챔피언이었던 아버지는 25년 전의 영광을 추억하며 아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모스크바|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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