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가 받은 시계가 여성용 아니라고?” 전군표의 착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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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서 준 4200만원짜리 남녀공용… 크기 작아 아내에게 줘 6년간 착용
檢, 특가법상 수뢰혐의로 구속기소
3000만원 미만 시계 받은 허병익은 특가법 해당 안돼 뇌물방조만 적용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받은 2700만 원짜리 여성용 시계. 프랭크뮬러 홈페이지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받은 2700만 원짜리 여성용 시계. 프랭크뮬러 홈페이지
“내가 받은 시계는 여성용이다. 허병익(전 국세청 차장·59)이 받은 남성용보다 싼 거다.”

CJ그룹에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30만 달러(2006년 7월 환율 기준 약 2억9000만 원)와 고가(高價)의 손목시계를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전군표 전 국세청장(59)은 검찰 조사에서 이같이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허 전 차장은 전 전 청장의 주장을 반박하며 “내가 받은 시계가 여성용이고 더 싼 것”이라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전 전 청장이 받은 시계는 스위스 브랜드인 ‘프랭크뮬러’의 판매가 4200만 원짜리 ‘남녀 공용’ 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허 전 차장이 받은 시계는 같은 브랜드의 ‘여성용’ 시계로 가격은 2700만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을까. 전 전 청장이 받은 시계는 남녀 공용이지만 다이얼 판(시계 몸체)의 크기와 디자인이 여성용처럼 작고 아담한 모양이다. 그는 이를 여성용으로 착각하고 부인에게 줘 6년간 착용하게 했다. 검찰에 소환된 전 전 청장은 부인이 시계를 착용하고 있는 사진을 수사팀에 제출하기도 했다.

허 전 차장이 받은 시계는 여성용이지만 다이얼 판의 크기는 전 전 청장이 받은 시계보다 다소 크다. 두 사람은 이 시계들을 2006년 한자리에서 함께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06년 10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힐튼호텔 내 시계 판매점에서 전 당시 국세청장과 허 당시 법인납세국장을 만나기 직전에 이 시계들을 직접 고른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그룹 최고경영자(CEO)가 뇌물로 건넬 금품을 직접 산 것. 결제는 이 회장을 수행한 신동기 CJ그룹 부사장이 했다. 신 부사장은 현금으로 계산하면서 할인까지 받아 남녀 공용 시계는 3570만 원, 여성용은 2346만 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계를 구입한 돈은 이 회장의 비자금에서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계를 구입한 이 회장과 신 부사장은 힐튼호텔 내 식당에서 당시 현직 국세청장, 법인납세국장이던 전 씨와 허 씨를 만나 식사했다. 식사 후 이 회장이 먼저 자리를 떴고 신 부사장이 허 국장에게 시계 두 개를 건넸다.

여성용으로 짐작됐던 다이얼 판이 작은 시계를 전 전 청장이 가졌다. 전 전 청장이 일부러 아랫사람인 허 전 차장에게 더 비싼 것으로 짐작됐던 큰 시계를 양보한 것인지, 무작위로 하나씩 가져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고가의 명품 시계는 대개 다이얼 판이 큰 남성용이 여성용보다 훨씬 비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혐의로 전 전 청장을 13일 구속 기소했다. CJ그룹에서 돈을 받아 전 전 청장에게 전달한 허 전 차장은 특가법상 뇌물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전 전 청장은 취임 직전인 2006년 7월 초 허 전 차장과 공모해 기관 운영비를 마련하는 방안을 협의한 뒤 허 전 차장의 고려대 동기인 신 부사장을 통해 이 회장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후 허 전 차장은 신 부사장의 사무실에서 30만 달러를 받아 전 전 청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허 전 차장이 손목시계를 받은 혐의(뇌물 수수)는 기소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뇌물 수수 혐의는 공소시효가 5년이어서 이미 지났고, 특가법상 뇌물 수수 혐의는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아직 남아 있지만 시곗값이 특가법이 적용되는 뇌물 수수 액수 기준(3000만 원 이상)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30만 달러도 전달만 한 것이어서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가담 정도가 (전 전 청장과) 공범으로 보기에는 약하기 때문에 뇌물 수수 방조 혐의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전군표#CJ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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