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범 교수 “30분만에 그어진 38선? 美-蘇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묵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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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반도 분할의 역사’ 펴내

이완범 교수는 신간 ‘한반도 분할의 역사’ 표지에 서용선 화가의 그림 ‘포츠담회의’를 실었다. 트루먼, 장제스, 스탈린, 처칠 등 열강 지도자들이 한반도 분할을 놓고 머리를 짜내는 모습이 표현됐다. 이 교수는 “포츠담회의 때 미국과 소련이 한국을 반으로 나눈다는 암묵적 타협을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이 교수의 신간 표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완범 교수는 신간 ‘한반도 분할의 역사’ 표지에 서용선 화가의 그림 ‘포츠담회의’를 실었다. 트루먼, 장제스, 스탈린, 처칠 등 열강 지도자들이 한반도 분할을 놓고 머리를 짜내는 모습이 표현됐다. 이 교수는 “포츠담회의 때 미국과 소련이 한국을 반으로 나눈다는 암묵적 타협을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이 교수의 신간 표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열강들이 한반도를 분할하려고 시도한 것은 6·25전쟁 때가 처음이 아닙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부터 시작해 19세기 말 청일전쟁, 20세기 초 러일전쟁 때도 외세는 수차례에 걸쳐 우리 땅을 가르려 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분단된 것은 1945년부터이니 5000년 역사에서 68년에 불과합니다. 우리 역사에는 통일된 기간이 훨씬 길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광복과 분단, 6·25전쟁 연구의 권위자인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52·정치학·사진)가 신간 ‘한반도 분할의 역사: 임진왜란에서 6·25전쟁까지’를 13일 펴냈다. 중도적 입장에서 방대한 자료 연구에 몰두해온 그는 좌파 시각의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우파 시각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모두에 필자로 참여했다. 신간은 그가 1983년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모은 자료와 연구를 집대성한 30년 만의 역작이다.

신간에서는 열강들의 한반도 분할 논의를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38선이 획정되는 과정을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금석문과 조선왕조실록부터 일본과 러시아의 외교문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 해제 문서와 국무부 자료 등 방대한 자료를 활용했다. 전체 942쪽 가운데 주석과 참고문헌, 주요 자료 복사본만 390쪽에 달한다.

이 교수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사이에서 주변 지역으로 폄하됐지만 오늘날 G2 시대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요충지가 됐다”며 “한국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긍지를 갖고 분열을 극복하자는 의지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분할을 둘러싸고 외국들끼리 흥정한 최초의 사례는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일본 간에 열린 강화회담이었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조선에 대해 종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 명나라 조정과 조선의 반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에 따른 전쟁 종결로 무산됐다.

이 교수는 신간에서 ‘38선은 1945년 7월 25일경 포츠담회담에서 결정됐다’는 자신의 기존 주장을 더욱 강조했다. 38선 획정은 미국의 군사적 편의에 따라 1945년 8월 11일 새벽 30분 만에 딘 러스크 미군 대령(1961년부터 8년간 국무장관을 지냄)이 거의 단독으로 했다는 것이 국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러스크 대령의 상관이었던 존 에드윈 헐 중장의 증언 기록을 발견해 38선은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획정됐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미 2001년 출간한 저서 ‘삼팔선 획정의 진실’(지식산업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이 주장은 12년간 학계에서 완전히 무시됐지만 그사이 공개된 옛 소련 자료를 교차 비교한 결과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기존엔 ‘한반도 분단이 포츠담회담에서 밀약됐다’는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의 밀약설을 지지했다면 신간에서는 이를 ‘묵계설’로 수정했다. 이 교수는 “38선 획정은 미국과 소련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암묵적 타협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그는 신간 표지에 서용선 화가의 그림 ‘포츠담회의’를 넣었다. 트루먼, 장제스, 스탈린, 처칠 등 열강 지도자들이 한반도 분할을 놓고 저울질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교수는 “분단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통일에 대비할 수 있다”며 “사료를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옛 소련 자료가 향후 더 공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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