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적장애女 집에 CCTV 달았더니… 성범죄 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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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경찰청 무료설치 운동 확산

18일 전남 장흥군의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A 씨(21) 자매 집에 이명호 씨(47)가 CCTV 2대와 컴퓨터를 무료로 설치하고 있다. 장흥경찰서 제공
18일 전남 장흥군의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A 씨(21) 자매 집에 이명호 씨(47)가 CCTV 2대와 컴퓨터를 무료로 설치하고 있다. 장흥경찰서 제공
성폭력 범죄에 취약한 지적장애 여성에게 ‘보호의 눈’을 달아주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폐쇄회로(CC)TV 등을 취급하는 업체인 미래컴퓨터를 운영하는 이명호 씨(47·전남 장흥군)는 15일 장흥군 장평면 한 마을의 지적장애 여성 A 씨(21) 자매의 집 앞에 CCTV 두 대를 설치했다. A 씨는 지적장애 1급, 여동생(20)은 지적장애 2급이다. 아버지도 지체장애를 앓고 있어 이 자매는 성폭력 범죄 피해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

이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관으로부터 우연히 “지적장애 여성의 성폭력 범죄 예방을 위해 CCTV 설치를 고민하고 있는데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내가 나서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면 무료로 설치해 주겠다”며 흔쾌히 CCTV를 설치해 줬다. 이 씨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장흥군 내 성폭력 피해 고위험군 지적장애 여성 20명에게 무료로 CCTV를 설치해 줄 예정이다. 한 가정에 CCTV를 설치하는 데는 70만 원 안팎이 든다. 이 씨는 “CCTV 무료 설치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적장애 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면 계속 설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여성을 노린 범죄가 계속 발생하자 경찰도 CCTV 설치에 주목하고 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성폭력 피해 고위험군으로 지정된 여성 598명의 집 현관에 CCTV를 설치하는 방안을 전남도와 협의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지난해 656건으로 이 중 70%가량이 지적장애 여성에 대한 범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적장애인은 지난해 12월 현재 약 16만 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의 6%에 이른다.

전남경찰청의 CCTV 설치 시도는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남의 한 소도시에서 동네 주민 2명이 보호자가 없는 틈을 타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했다. 가해자는 구속됐지만 보호자는 피해자를 보호시설에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유사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해당 여성의 집 현관에 CCTV를 설치했다. 비용은 직원 20명이 2만∼3만 원씩 모든 돈으로 충당했다. 이후 1년여 동안 추이를 지켜본 결과 추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적장애 여성은 성폭력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피해를 입어도 외부에 알리지 못하고 그 같은 행위가 범죄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평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내기 때문에 누군가 접근해 성폭력을 저질러도 이것을 관심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범죄 가해자는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남성이 많고 장애 여성 본인의 집이나 인근에서 범죄가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CCTV 설치만으로도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은 입소문만으로도 상당한 범죄 억제 효과가 있다”며 “다만 비용과 효율 문제를 고려해 시범적으로 실시해 보고 민간업체와 연계해 확대 설치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은 “CCTV로도 범죄 예방은 되겠지만 마을 단위나 지자체에서 성폭력 교육을 실시하고 지적장애 여성이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장흥=이형주 기자·김준일 기자 peneye09@donga.com
#전남경찰청#cctv#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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