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전북/제주/이 사람]1961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받았던 허의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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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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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 살아있는… 4·19정신 담은 시 쓰고싶어”

1960년 4월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 육군 중위 허의령 씨(83·사진)가 폐 절개 수술을 앞두고 누워 있었다. 그는 폐 농양을 치유하기 위해 1958년부터 3년간 투병생활을 했지만 낫지 않자 의료진이 폐 절개라는 최후 결정을 했다.

당시 서울 도심은 시끄러웠다. 젊은 학생들이 도심에서 “이승만 대통령 부정선거, 당선무효”를 외쳤다. 4월 19일이 되자 피를 흘리는 학생들이 중앙의료원으로 실려 왔다. 병실마다 부상당한 학생들로 넘쳐났다. 허 씨는 같은 병실에서 누워있는 학생들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1951년 전남 순천고를 졸업한 뒤 공병사관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1955년까지 복무하다 폐 농양을 앓게 됐다. 6·25전쟁 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펜을 놓고 군인이 된 그는 학생들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허 씨는 병상에서 “학생들은 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지, 누가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고민하며 창문을 바라봤다. 창가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붉은 꽃이 있었다. 학생들이 흘린 피처럼 붉은색의 베고니아 꽃이었다. 허 씨는 4·19가 끝난 뒤 수술을 받았고 같은 해 말 폐 농양이 치유돼 제대했다.

그해 겨울 그는 4·19혁명의 아픔을 담은 시 ‘사월(四月)에 알아진 베꼬니아 꽃’을 월간 종합교양지인 사상계에 냈고 이 시로 1961년 1월 사상계 2회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사상계 1회 신인문학상은 시 당선작이 없었다. 사상계 시 부문 첫 신인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당시 사상계 사장이었던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허 씨를 만나 “4·19를 사실대로 쓴 시인”이라고 격려했다. 조지훈 시인(1920∼1968)도 “자신만의 음성으로 시를 썼다”고 칭찬했다. 문학계에서는 당시 허 씨의 시가 4·19 문학의 선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4·19를 다룬 대표적 시로 거론됐다.

허 씨는 이후 고향인 전남 순천시 대대동에서 50년간 오이농사를 지었다. 순천만에서 농부로 살면서 지금도 시를 쓰고 있다. 허 씨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4·19 민권 정신을 53년간 잊지 않고 살았다”며 “민권이 살아있는 정치를 꿈꾸며 4·19정신을 담은 시를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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