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 피칭 X파일] 나이트의 명품 싱커…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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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1일 07시 00분


넥센 외국인투수 나이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싱커를 익혀 야구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새 구종을 익히기까지는 3년의 ‘숙성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견딜 수 있느냐는 온전히 투수의 몫이다. 스포츠동아DB
넥센 외국인투수 나이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싱커를 익혀 야구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새 구종을 익히기까지는 3년의 ‘숙성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견딜 수 있느냐는 온전히 투수의 몫이다. 스포츠동아DB
■ 투수들의 결정구 탄생의 비밀

삼성서 방출된 후 직구-슬라이더 한계 느껴
손승락한테 그립 배워 캠프서 새 구종 연마
지난 시즌 완성형 싱커로 16승 올리며 대박

현역때 송진우도 은퇴 기로서 만난 체인지업
제2 야구인생 열고 구대성-류현진에 대물림


넥센 나이트(38)의 싱커는 국내 최고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뛰어난 싱커볼러로 평가받는다. 오승환(삼성)의 직구, 윤석민(KIA)의 슬라이더, 박희수(SK)의 투심패스트볼, 김진우(KIA) 의 커브와 함께 타자들이 꼽는 최고의 공이다. 나이트는 싱커를 앞세워 지난해 16승을 올렸다. 무려 208.2이닝을 던졌고, 30차례의 선발등판에서 27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타자 몸쪽에서 절묘하게 꺾이는 그의 싱커는, 특히 우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2011년까지 평범했던 그는 싱커를 던지면서 최고 투수로 변신했고, 위기를 즐기며 실점을 막았다. 나이트는 한화 송진우 투수코치와도 닮았다. 송진우 역시 서클체인지업을 배우면서 새로운 야구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투수에게 결정구는 엄청난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위기가 두렵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올해 나이트의 싱커가 또 한번 주목되는 이유다.

○나이트의 싱커는 언터처블!

나이트가 시즌 첫 승을 따낸 4월 5일 대전 한화전. 그는 102개의 투구 가운데 싱커를 57개나 던졌다. 7회까지 6안타를 맞았지만, 최고 구속 146km까지 기록된 싱커를 던져서는 한 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았다. TV중계화면을 봐도 그의 싱커는 우타자가 치기 힘든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나이트의 릴리스 포인트는 오버핸드 가운데도 상당히 높다. 높은 곳에서 우타자의 발목 근처로 꺾이는 그의 싱커는 정상적인 스윙으로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타자들이 “나이트의 싱커는 안 치는 게 답”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투수에게 몸쪽 승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이트는 싱커를 터득하면서 몸쪽 승부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의 싱커를 위기상황에서 던졌지만, 컨트롤이 정교했다. 지난해 그는 300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그 가운데 싱커는 400개 정도였고, 몸에 맞는 공은 불과 7개뿐이었다.

나이트는 싱커를 탈삼진용과 내야땅볼용, 두 가지로 나눠 던진다. 홈플레이트를 3분의 1로 나눈 뒤 우타자의 몸쪽 플레이트를 타깃으로 삼아 각도와 스피드를 조절한다. 싱커는 그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선물했다. “위기가 와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밝혔다. 자신감은 제구력과도 연결된다. 2011년 172.1이닝 동안 98개의 볼넷을 내준 그가 지난해에는 208.2이닝을 던지면서 53개의 볼넷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싱커를 얻었다!

2011년 넥센의 스프링캠프에서 나이트의 생각은 온통 ‘서드 피치’뿐이었다. 직구와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그는 당시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2010년 무릎 수술 후 삼성에서 방출된 그에게는 무언가 새로운 구종이 절실했다. 옆에서 피칭하던 손승락을 봤다.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싱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승락! 방금 던진 공의 그립을 보여줘!” 그것이 시작이었다. 캠프 내내 싱커를 던졌다. “어색했지만 꼭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던졌다.” 싱커는 미국에서도 코치들에게 배웠지만 젊었을 때는 간절하지 않았다. 2011년 그는 실전에서 싱커를 테스트했다. 평범했지만 가능성을 엿봤다.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싱커가 가끔씩 보였다. 그리고 2012년 스프링캠프에서 마침내 싱커를 완성했다. “정말 싱커가 필요했다. 간절한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던지니까 내 공이 되더라.”

싱커는 사이드암 투수들이 던지기 편한 공이다. 정통파는 싱커를 던지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싱커는 2009년 로페즈(KIA)가 다승왕에 오르면서 국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요즘은 대부분의 외국인투수들이 싱커를 던지고 있지만, 나이트의 ‘명품’ 싱커는 으뜸이다.

○송진우! 15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쌀을 씻었다!

송진우는 1998년 미국교육리그에서 서클체인지업을 배웠다. 개인통산 100승은 돌파했지만, 2년 연속 6승에 그치며 은퇴까지 고민하던 시기다. 당시 인스트럭터였던 제프 코치에게 서클체인지업의 그립을 배운 뒤 빠르게 체인지업을 마스터 했다. “그때 내가 얻은 것은 서클체인지업뿐만이 아니었다. 악력강화와 피칭 방법까지 진짜 중요한 걸 많이 배웠다.” 제프 코치는 송진우가 100승 투수라는 말에 그를 따로 불렀다. “실투는 팔꿈치, 어깨가 아니라 손의 악력이 떨어져서 나온다. 투구 밸런스가 좋으니까 악력을 강화하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그날부터 은퇴할 때까지 송진우는 통에 쌀을 넣고 쥐어짜며 악력을 키웠다. 송진우는 “대한민국 남자 중에 나만큼 쌀을 많이 씻은 사람 없을 것”이라면서 젊은 투수들에게 꼭 해보라고 권한다. 서클체인지업은 송진우에게 제2의 야구인생을 선물했다. 그는 프로 최다인 개인통산 210승을 달성했고, 2000탈삼진과 3000이닝 투구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서클체인지업과 엄청난 쌀 씻기가 불러온 효과였다.

○송진우-구대성-류현진!

송진우, 구대성(시드니 블루삭스), 류현진(LA 다저스)의 서클체인지업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들은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 서클체인지업을 가르쳐줬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호주에서 연습경기를 펼치던 도중 송진우가 구대성을 찾았다. “서클체인지업을 한번 던져봐! 너 같으면 쉽게 배울 거야.” 송진우에게 그립을 배운 구대성은 “쉽네”라면서 단 하루 만에 서클체인지업을 익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올림픽 동메달이 걸려있던 일본과의 3·4위 결정전에서 구대성은 배운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서클체인지업을 태연하게 던졌다는 사실이다. 배짱 하나는 역시 알아줘야 하는 투수다.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 스승은 알려진 대로 구대성이다. 2006년 입단한 류현진에게 체인지업 그립을 알려줬다. “현진아! 넌 직구도 좋고 커브도 좋으니까, 체인지업만 되면 진짜 최고가 되겠다.”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은 미국에서도 인정하는 명품이다. 송진우에서 구대성으로, 구대성에서 류현진으로 전해진 역사 깊은 체인지업이다. 송진우의 말이 재미있다. “(류)현진이 체인지업을 보니까, 나랑 (구)대성이의 체인지업은 체인지업이 아니더라.”

○3년 후를 보고 도전하라!

나이트에게 싱커를 물어보는 젊은 투수들이 많다. 넥센 투수들을 비롯해 타 팀 투수들도 그에게서 싱커 그립을 배운다. 나이트가 가장 주목하는 투수는 윤희상(SK)이다. “경기 도중 러닝할 때 항상 그가 공을 갖고 달려온다. 그립을 물어보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나이트가 윤희상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정통 오버핸드이기 때문이다. 싱커를 잘 던지는 투수 가운데 나이트처럼 릴리스 포인트가 높은 투수는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싱커볼러들도 대부분 스리쿼터 형의 투수들이다. 나이트는 자신처럼 높은 타점의 릴리스 포인트를 갖고 있는 윤희상에게 “당장보다는 3년 후를 보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뉴욕의 요리사들은 후배들에게 레시피를 공개한다고 한다. 후배들을 가르쳐야 뉴욕의 외식산업이 계속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내투수 가운데 나이트의 싱커를 재현할 수 있는 투수가 한두 명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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