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 인류 멸망? 우리 안에 敵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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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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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이 출현해 인간을 먹어치운다” 진화론 옷 입은 SF-만화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된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 모습(위)과 웹툰 ‘조의 영역’에 나오는 물고기. 어류가 진화해 다리가 생기면서 육지의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 ‘진격의 거인’ 홈페이지(일본 MBS)·조석 씨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된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 모습(위)과 웹툰 ‘조의 영역’에 나오는 물고기. 어류가 진화해 다리가 생기면서 육지의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 ‘진격의 거인’ 홈페이지(일본 MBS)·조석 씨 제공
소설 ‘제노사이드’에 등장하는 진화된 신인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얼굴 안에 그려진 해골은 새로운 종이 나타날 때 하위 종(현 인류)이 학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금가지 제공
소설 ‘제노사이드’에 등장하는 진화된 신인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얼굴 안에 그려진 해골은 새로운 종이 나타날 때 하위 종(현 인류)이 학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금가지 제공
인류의 적은 진화된 인류?

인류가 상위 종(種)으로 진화해 현생 인류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SF 소설, 만화(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이 인기다. 외계 생명체 때문에 인류나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전의 대중문화 콘텐츠와는 다른 양상이다.

사람들은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잡아먹었다’고 주장했던 프랑스 국가과학연구센터(CNRS) 페르난도 로지 박사의 2009년 연구 결과를 떠올리며 섬뜩해한다. 로지 박사는 프랑스 서남부 지역의 동굴을 조사한 결과 호모사피엔스가 석기를 이용해 동물의 뼈에서 살을 발라낼 때 생긴 것과 유사한 단면을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왜 인류의 주적이 외계 생명체에서 진화된 인류로 ‘진화’한 걸까.

진화한 최상위 종이 지구의 새 주인으로

최근 10, 20대들이 즐겨 보는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은 키 7∼15m로 진화한 거인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사야마 하지메의 이 만화에서 인간은 영토를 빼앗긴 후 거인이 넘지 못하도록 높다란 성을 짓고 그 안에서만 갇혀 살아간다.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온 인류가 거인에게 잡혀 먹히는 과정에서 느끼는 공포와 굴욕감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어 국내에서 10만 부 이상 팔렸다. 일본에서는 1300만 부가 나갔고,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이달 방영을 앞두고 있다. 실사 영화로도 만든다는 소식이 들린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는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에서 현 인류를 뛰어넘는 지력을 가진 차세대 인류가 탄생해 현 인류와 전쟁을 벌인다는 줄거리다. 제노사이드를 출판한 ‘황금가지’ 김준혁 부장은 “SF 소설은 대개 2000∼3000부가 나가는데 제노사이드는 5만 부 이상 팔렸다”며 “인간의 세포가 변해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는 식의 진화를 소재로 한 SF 소설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초 네이버에 연재돼 큰 인기를 끈 조석의 웹툰 ‘조(潮)의 영역’에도 진화된 생물종이 나온다. 물고기가 진화해 다리가 생기면서 육지를 장악하게 되고 인간은 이들에게 몰살당한다. 참혹한 스토리와 그림에 누리꾼들은 “너무 섬뜩하다”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조회수를 올려놓았다.

승자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시대 반영

이처럼 엽기적인 콘텐츠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먹히는 이유는 뭘까. 작가들은 소재 고갈로 웬만한 이야기로는 젊은층에게 충격을 주기 어렵다고 말한다. ‘조의 영역’의 조석 작가는 “괴물, 괴수가 나오는 콘텐츠는 ‘거기서 거기다’라고 생각해 작가 입장에서는 색다른 소재를 찾아야 했다”며 “사람들은 자신이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생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의 존재가 나오면 충격도 클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탐욕적 물질주의를 주체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는 우리 안에 있다’고 우려하게 됐다”며 “이 때문에 외계 생명체 같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 즉 진화된 종이 인류를 위협하는 스토리가 공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 전반에서 좀비물이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웜 바디스’에서 인간은 좀비가 된 후 삶의 이유를 잃으면서 포식이란 욕망만 남은 ‘보니’라는 존재로 변한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이야기는 시대를 반영한다. 새로운 종과 인간의 싸움은 상대를 쓰러뜨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 시대를 투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인류#진화 인류#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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