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일본에서 K팝 시들”? K팝이 아니라 걸그룹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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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8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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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日싱글 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올린 김현중. 스포츠동아DB
2012년 日싱글 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올린 김현중. 스포츠동아DB

정초부터 일본 한류, 특히 일본 내 K팝 향방에 우려 섞인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2012년 오리콘 연간 음반판매 결산자료에 기반한 것들이다. 그중 파이낸셜뉴스 1월4일자 기사 ‘日, K팝 열풍의 끝? 2012 K팝 성적 전년에 비해 ‘대하락’’을 살펴보자.

기사는 “2012년 싱글 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올린 김현중이 기록한 앨범 판매량은 20만2672장으로 2010년 동방신기의 ‘Break Out’(28만9412장)이나 2011년 동방신기의 ‘WHY?(28만5051장)’보다 약 30%가량 판매량이 하락했다”면서 “앨범 차트 역시 2012년 카라와 소녀시대의 ‘Super Girl’과 ‘Girls' Generation’은 각각 29만5651장과 22만9043장의 판매고를 기록해 2010년 동방신기 ‘Best Selection 2010(56만9530장)’에서 절반 가까이 판매량이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또 “실제로 한 해 동안 일본 내 가장 많은 세일즈를 기록한 아티스트 TOP5에 2010년은 동방신기 (2위, 94억3100만엔, 한화 약 1143억 원), 2011년은 카라(4위, 49억2600만엔, 한화 약 597억 원)와 소녀시대(5위, 40억4900만엔, 한화 약 490억 원)가 포함됐었으나 2012년에는 단 한 팀도 포함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해석이다. 위 기사는 “이처럼 일본 내 한류스타들의 입지가 흔들린 가장 큰 이유는 한일 관계의 급속한 냉각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 노다 총리의 친서 반송 등 한일관계를 냉각시키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양국에는 반일, 반한의 정서가 정치권을 넘어 사회, 문화적인 현상으로까지 퍼져나갔고 이는 결국 대호황을 맞이했던 한류 붐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면서 “또한 카라와 동방신기, 소녀시대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많은 아이돌 스타가 줄지어 일본진출을 시도하면서 일본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K팝이 과거에 비해 식상해졌다는 점 역시 한류의 입지가 흔들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해석은 물론 위 기사가 독창적으로 제시한 건 아니다. 2012년 오리콘 연간 차트를 다룬 거의 모든 기사가 위와 같은 해석에 동참했다. 정치적 원인으로 벌어진 한일관계 냉각, 그로 인한 일본미디어의 한류 블로킹이 K팝 하락세의 주원인이란 분석이다.

이런 식의 분석이 계속 되다보니 근래 들어선 일본시장에 대해 자포자기 하는 분위기까지 연출되고 있다. 대부분 ‘강남스타일’의 구미·유럽 진출을 대안으로 설정하며, 이제 불안정한 일본시장에 매달리지 말고 글로벌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여기엔 일본 내 혐한류(嫌韓流) 분위기에 자존심 상한 인상들도 섞여있다.

보이그룹·남성솔로는 독도 상황에 거의 타격 안 입어

물론 한류의 글로벌화란 대전제는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세계 2위 규모 음악시장, 부가상품시장을 포함하면 압도적 세계 1위 음악시장을 그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일본은 우리와 인종적·문화적 유사성을 담보로 구미·유럽에 비해 훨씬 지속가능성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칭기즈칸 병(病) 환자처럼 세계정복이네 어쩌네 하기 전, 여전히 가장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는 일본시장의 실제 현황은 어떤지, 시장회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부터 살피는 게 순서란 얘기다.

그런데 바로 그 과정의 첫 단추에서부터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자료를 분석하면 할수록 국내 미디어보도와는 꽤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아주 기본적인 전제, 즉 지난해 8월 독도 상황 이후 K팝이 전반적 하락세를 겪고 있다는 분석에서부터 오류가 발생된다.

물론 지난해 8월 이후 일본미디어의 한류 블로킹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은 명백한 팩트다. 프로그램 하나하나 따질 필요 없이, 가장 시청률 높은 연말시상식에 K팝 가수들이 단 한 번도 초대되지 못한 점으로 쉽게 입증된다. 그러나 한국 보이그룹의 경우 이 같은 미디어 블로킹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보이그룹 중심인 동방신기부터 보자. 2011년 1월26일 발매된 ‘와이?’가 28만6056장을 판매하는 쾌거를 거뒀지만, 이는 해체소동 후 반짝 효과에 불과했다. 5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동방신기는 곧 그만한 인기저하를 맞았다. ‘슈퍼스타/아이 돈 노우’ 18만4317장->‘윈터~윈터 로즈/듀엣’ 15만3177장->‘스틸/원 모어 씽’ 16만791장->‘안드로이드/블링크’ 17만5544장 등 15~20만장 사이에서 맴돌았다. ‘안드로이드/블링크’가 독도 상황 직전인 7월11일 발매 싱글이다.

국내미디어 논리대로라면 올해 1월16일 발매 싱글 ‘캐치 미-이프 유 워너/아이 노우’는 판매량 측면에서 당연히 폭락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싱글은 발매 첫 주 13만7028장을 팔았다. 직전 ‘안드로이드/블링크’의 첫 주 15만2412장보단 소폭 내려앉았지만, 그 전 ‘스틸/원 모어 씽’의 13만8664장과는 불과 1636장 차이였다. 프로모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윈터~원터 로즈/듀엣’의 12만9525장보단 물론 높았다. ‘캐치 미-이프 유 워너/아이 노우’는 현재까지 15만472장을 팔아 곧 ‘스틸/원 모어 씽’ 최종판매량도 앞설 것으로 보인다. 별다른 하락세가 감지되진 않았단 얘기다.

무섭게 치고 올라온 2PM도 마찬가지다. 6월6일 발매된 ‘뷰티풀’이 첫 주 14만1236장에 총판매량 16만3463장, 11월14일 발매된 ‘마스커레이드’가 첫 주 13만242장, 총판매량 15만1227장이었다. 8월 전후로 별 차이가 없다. 샤이니는 5월16일 발매된 ‘셜록’이 6만8291장을 판매한 뒤 10월10일 발매된 ‘대즐링 걸’에선 오히려 11만548장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곤 12월11일 발매된 ‘1000년, 계속 내 곁에 있어’에서 다시 4만6117장으로 내려앉았다. 어찌됐건 8월 상황과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은 입증된 셈이다.

나머지 보이그룹들도 대개 비슷비슷하다. 하락세라 거론할 정도 낙폭이 아니거나, 반대로 소폭 상승한 경우도 있다. 장근석, 김현중 등 남성솔로들은 8월 이후 후속 싱글이 존재하지 않아 비교대상이 되긴 어렵지만, 어찌됐건 앨범판매는 나쁘지 않았다.

걸그룹 부진은 이미 2011년부터 진행되기 시작

이제 “2012 K팝 성적 전년에 비해 ‘대하락’” 진실은 특이하게 나온다. 2012년 부진은 결국 K팝시장의 또 다른 한 축, 즉 걸그룹들이 크게 부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보이그룹은 나름 선방했고, 남성솔로는 김현중을 중심으로 새롭게 치고나가기까지 했지만, 걸그룹 낙폭이 워낙 크다보니 전체 수치를 갉아먹어 전년 대비 하락세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2012년은 일본시장에서 K팝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해가 아니라, 한국 걸그룹들이 유독 하락한 해로 규정지을 필요가 있다.

왜 그랬을까. 원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 한국 걸그룹 하락 역시 지난해 8월 독도 상황과는 밀접하지 않다는 점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 걸그룹 하락세는 이미 2011년 하반기부터 뚜렷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싱글판매 측면에서 한국 걸그룹 선두로 꼽히는 카라부터 보자. 2010년 8월11일 발매한 ‘미스터’가 총 판매량 14만4856장을 기록한 이래 ‘점핑’ 11만9727장->‘제트코스터 러브’ 22만5521장->‘고고 섬머’ 23만813장으로 계속 성장하다, ‘윈터 매직’에서 12만4965장으로 폭락을 경험했다.

‘점핑’과 ‘윈터 매직’이야 앨범 발매 직전 내놓는 선행싱글이란 점에서 사정을 감안한다 치자. 선행싱글은 조금 뒤 앨범으로 몰아사려는 수요 탓에 늘 판매가 저조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앨범이 나오고 4개월 뒤 등장한 6번째 일본싱글 ‘스피드업/걸스 파워’도 15만8613장으로 확연한 하락세에 돌입했단 점이다. 이때가 지난해 3월21일이다. 8월 독도 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 뒤 10월17일 발매된 선행싱글 ‘일렉트릭 보이’에서 마침내 10만장 라인이 깨졌다. 현재까지 총 판매량은 7만4704장이다.
日시장 한국 선두 걸그룹 카라는 일본싱글 ‘스피드업/걸스 파워’와 ‘일렉트릭 보이’에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스포츠동아DB
日시장 한국 선두 걸그룹 카라는 일본싱글 ‘스피드업/걸스 파워’와 ‘일렉트릭 보이’에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스포츠동아DB

일본 내 투톱 소녀시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0년 9월8일 발매된 첫 일본싱글 ‘지니’가 14만4137장을 판매한 이래, ‘지’에서 20만4569장을 기록한 뒤 ‘미스터 택시’ 17만4365장->‘파파라치’ 13만6181장 순으로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파파라치’ 시점이 6월27일이다. 8월 독도 상황과 관련이 없다.

이후 9월26일 발매된 ‘오!’가 8만4814장, 앨범 발매 1주 전 내놓은 기괴한 선행싱글에 1종으로만 발매한 ‘플라워 파워’가 현재까지 3만9007장을 판매한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소녀시대 싱글은 ‘지’를 기점으로 매 싱글마다 3~4만장씩 판매가 깎여나가는 추세다. 하락세가 자연스러운 하강사선을 그린다.

그 외 걸그룹들도 대부분 카라·소녀시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 나가다 8월 이후 판매량이 폭락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2011년 하반기부터 하락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하락선상에서 8월 이후 상황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12년의 한국 걸그룹 대폭락은 일정부분 예정된 파산이었다고도 볼 만하다. 전혀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건 아니란 얘기다.

독보성과 차별성이 소멸돼가는 한국 걸그룹

그럼 201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국 걸그룹들의 하락세 원인은 대체 뭘까. 좀 더 섬세히 분석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판매 자료를 각기 나눠 살펴보다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걸그룹 투톱 소녀시대와 카라의 판매는 싱글보다 앨범 쪽에서 훨씬 낙폭이 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1년과의 전체시장 갭도 사실 이 걸그룹 앨범판매 문제 탓에 더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6월 발매된 소녀시대의 첫 정규앨범 ‘걸스 제네네이션’은 무려 74주 동안이나 오리콘 차트 100위 안에 머물며 총 87만1097장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지난해 11월28일 발매된 소녀시대 정규2집 ‘걸스 제네레이션 II: 걸스 & 피스’는 현재까지 고작 18만6167장을 판매하는데 그치고 있다. 첫 주 판매부터 1집 23만1553장->2집 11만6963장으로 딱 반절이 폭락했다. 총 판매량은 반절도 아닌 삼분의 일절 이하로 떨어질 위기다.

애초 앨범형으로 평가받던 소녀시대가 이 모양이니 카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2010년 11월 발매된 정규1집 ‘걸스 토크’가 총 48만4635장, 1년 뒤 2011년 11월 발매된 2집 ‘슈퍼 걸’이 45주 동안 오리콘 랭크 인되며 총 77만7957장을 판매했지만, 지난해 11월24일 발매된 ‘걸스 포에버’는 현재까지 11만8744장만을 팔았을 뿐이다. 첫 주 기준으론 2집 27만5206장->3집 7만3224장으로 삼분의 일 이하로 떨어졌다. 벌써 오리콘 위클리 차트 100위권 밖으로 떨어져 추가판매도 기대할 만한 게 못 된다. 전작에 비해 사분의 일절, 오분의 일절까지 떨어질 듯 보인다.

일본음악시장에서 앨범판매는 싱글판매와 성격이 전연 다르다. 일단 가격 면에서 3배 이상 차이 나 소위 트렌드성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충성도 높은 오타쿠층 또는 해당뮤지션 음악성에 끌린 퀄리티-체이서들이 주로 소비한다. 이런 소비층이라면 암만 혐한 분위기나 미디어 블로킹이 극심해도 한꺼번에 삼분의 일절, 사분의 일절로 떨어져나가진 않는다. 상식적 폭락선이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도 일반상품시장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상식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급격한 판매저하는 그 어떤 상품에 있어서건 동일한 원인점을 공유한다. 해당상품이 지니고 있던 독보성과 차별성이 무너지고, 유사상품이 새로운 셀링 포인트를 추가해 등장한 상황이란 것. 결국 한국 걸그룹 부진의 근본적 원인도 유사상품이 제공된 데서 찾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대중음악산업이 한국 걸그룹 벤치마킹에 들어간 건 K팝 인베이젼이 시작된 2010년 직후다. 2011년 초 괴물 걸그룹 AKB48에선 섹시한 외모로 여성층에 인기 있던 멤버 이타노 토모미를 솔로로 데뷔시켰다. 한국 걸그룹과 같은 일렉댄스 계열에 분위기도 한국 걸그룹 특유의 섹시모드와 유사했다. 그해 여름이 되자 멤버 수에서 스타일까지 노골적으로 소녀시대 카피를 시도한 걸그룹 플라워가 에그자일 소속사 LDH에서 등장했다. 그밖에 가벼운 스타일 카피나 방향성 카피는 일정부분씩이나마 여러 팀들에서 계속 이뤄졌다.

이들은 대개 퀄리티 면에서 크게 떨어져 유사상품 이미지를 벗진 못했지만, 같은 콘셉트 내에서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의 높은 접근성과 친밀감, 동질감, 미디어 노출도를 더 갖추고 있었다. 때 되면 문득 생각난 듯 찾아오는 한국 걸그룹들과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한국 걸그룹의 독보성과 차별성을 일정부분 감소시키고, 새로운 셀링 포인트를 추가한 경우다. 이 정도면 한국 걸그룹 독주 상황에 분위기 전환 정도는 해줄 조건이 됐다.

한국 걸그룹의 실질적 경쟁상대로 거듭난 모닝구 무스메

그러다 지난해 여름부턴 실질적 경쟁상품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16년차 초장수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 사례다. 모닝구 무스메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내리막길 아이돌의 대표 격 존재로 여겨졌다. 싱글판매가 첫 주 3만장대, 총판매량 4만장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앨범은 그보다 더 끔찍했다. 마지막으로 총판매량 10만장대를 넘어섰던 건 무려 8년 전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7월, 50번째 싱글 ‘원. 투. 쓰리/더 마천루쇼’부터 확 바뀌었다. 갑자기 첫 주 판매량 10만598장을 기록, 이전 5개 싱글 평균의 3배가량 수직상승했다. 다음 싱글 ‘와쿠테카 테이크 어 챈스’에서 8만1682장(총판매량 8만8977장)으로 약간 주춤했지만, 지난달 23일 발매된 ‘헬프 미’가 전작대비 14.2% 성장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헬프 미’는 현재까지 10만198장을 판매한 상황이다.

이 정도 판매량이면 걸그룹 중 AKB48, SKE48, NMB48, 노기자카46 등 AKB계열만은 못해도, 그 다음 레벨인 카라, 소녀시대, 퍼퓸 급은 된다. 지금으로선 오히려 카라, 소녀시대보다 높다. 내리막길 아이돌에서 단숨에 2위 군단 선두급으로 튀어 오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 체면 차리지 않은 노골적 K팝 벤치마킹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전환점이 된 ‘원. 투. 쓰리’는 모든 면에서 한국 걸그룹을 벤치마킹한 싱글이었다. 오토튠을 과도하게 사용한 일렉댄스에 포메이션 변화 중심 칼군무를 구사했다. 일본 팬들조차 너무 심한 벤치마킹이 아니냐며 수근 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모닝구 무스메는 ‘무늬만 K팝’인 여타 벤치마킹 팀들과 달리, 일본아이돌시장에서 가장 K팝 방향성에 근접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약 3년여 간 신(新)멤버를 가입시키지 않은, 세칭 플라티나기(期)를 겪으며, 퍼포먼스 구사력이나 가창력 측면에서 여타 일본아이돌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아직 완전히 한국 걸그룹을 따라잡은 건 아니어도 준(準)대체제 정도는 됐다.

여기에 소위 ‘AKB 상법’이라 불리는 악수회와 체키회 전략을 병행시켜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프리미엄까지 덧붙였다. 그러자 상황이 단번에 뒤집혔다. 30~40대 남성 오타쿠들이 득실대던 공연장과 악수회장에 여성팬들 모습이 점점 늘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걸그룹에 열광을 보내던 이들이었다.

이처럼 노골적인 K팝 벤치마킹, 그를 바탕으로 한 한국 걸그룹시장 뺏기 전략은 모닝구 무스메에게 무려 8년6개월만의 첫 주 10만장 돌파 성과를 안겨줬다. 이후론 같은 방향성이 지속됐다. 이어진 싱글 ‘와쿠테카 테이크 어 챈스’와 ‘헬프 미’는 보다 고도화된 형태로 K팝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어차피 똑같은 방향성과 접근방식, 방법론을 지니고 있으니 시장대체도 쉽게 진행됐다. 그리고 그만큼 한국 걸그룹시장은 조각조각 나 싱글이건 앨범이건 판매저하 가속화로 이어지게 됐다는 순서다.

시장이 겹치지 않는 남성아이돌, 겹치는 여성아이돌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한국 걸그룹은 일본의 벤치마킹 탓에 시장을 빼앗겨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치자. 그럼 어떻게 한국 보이그룹·남성솔로는 그런 상황을 피해나갈 수 있었을까. 왜 한국 보이그룹·남성솔로 시장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가시화되지 않는 걸까.

이는 일본대중음악산업이 효율성 측면에서 한국 보이그룹·남성솔로를 딱히 견제하지 않는 탓으로 볼 수 있다. 일본시장에서 보이그룹 소속 남성아이돌은 여타 장르, 미디어에 쉽게 진입할 수 있다. 각종 대중문화상품의 주 소비층인 여성층의 맹렬한 유사연애(類似戀愛) 심리를 바탕으로 한 탓이다.

그런 구조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이젠 TV드라마, 영화, 공연예술, 출판 등 대부분 대중문화산업이 오히려 남성아이돌에 종속돼버린 상황이다. 남성아이돌 없인 단 한 분기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게 현 일본TV드라마계 현실이고, 공연예술계와 출판계 등도 점차 남성아이돌 후광에 의존하는 추세다.

그런 다(多)장르 섭렵 전략으로 여태껏 수익성을 올려가며 한창 재미보고 있었는데, 기껏 싱글 20~30만장 파는 한국 보이그룹·남성솔로를 벤치마킹하려 전에 없던 살벌한 퍼포먼스와 가창력 트레이닝을 시킨다? 효율성 면에서 크게 떨어지는 발상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TV드라마라도 한 편 더 잡는 게 현실추구 측면에서나 미래 동력확보 차원에서 더 유리하다. 한편 주로 언어상의 문제로 한국 남성아이돌은 TV드라마·영화·공연예술·출판계 진입에 한계가 있어 딱히 자국 상품 경쟁대상이 못 된다는 점도 ‘방치’의 또 다른 원인이 됐다.

그러나 걸그룹 등 여성아이돌은 상황이 다르다. 수익구조가 일본상품이나 한국상품이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수익원은 음반판매, 음원판매, 공연수익, CF수주, 사진집판매, DVD판매 등에 국한된다. 여타 장르 진출은 일본상품이나 한국상품이나 마찬가지로 어렵다. 결국 음악을 중심으로 한 시장구성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장구성이 겹쳐버리니 자연 견제대상이 되고, 시장대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벤치마킹 발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수록 불리하다. 모닝구 무스메 같은 빛바랜 브랜드로도 이 정도 효과가 나오는데, 작정하고 참신한 대체제들을 내밀기 시작하면 상황은 지금보다도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그룹 입지는 반드시 다져놓아야 한다

여성아이돌은 여러모로 다루기 참 까다로운 콘셉트상품이다. 그 집합체인 걸그룹은 더욱 그렇고, ‘여성이 동경하는 여성’ 콘셉트로 여성층에 어필하는 한국 걸그룹들은 모든 아이돌 분류 중 가장 복잡한 판매구조를 지닌다. 특히 저항감 심한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입장이라면 사실상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시장 내 한국 걸그룹 입지 확보는 한국대중음악산업 입장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여성아이돌이 지니는 특유의 대중성 탓이다. 일본미디어에서도 한국 걸그룹이 상륙하고 나서야 K팝 인베이젼에 대해 대대적으로 다룬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걸그룹이 밀리기 시작해 더 이상의 대중적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자칫 K팝 상품 전체의 대중적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냥 이상한 아줌마들의 오타쿠 상품처럼 치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단 말이다. 남성아이돌만 잘 팔아도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며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미디어는 한동안 ‘K팝적 방법론’이란 테제를 제시하며 신(新)한류 예찬론을 늘어놓기 바빴다. 그런데 그 ‘K팝적 방법론’이란 사실상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일렉댄스, 칼군무, 늘씬한 미모의 남녀, 그 외에 몇몇 팩키징 및 마케팅 차원 아이디어들이 더 붙는다. 그게 다다. 딱히 복잡한 논리나 독보적인 요소는 없다. 카피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다만 여타 국가들은 우리와 대중음악산업 풍토가 다른 탓에 ‘지금 당장’ 카피하기엔 무리였던 것뿐이고, 굳이 카피‘씩이나’ 해야 할 정도로 시장지속성이 확인된 것조차 아니어서 그저 방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 확인만 된다면, 일정기간 준비는 필요할 지라도, 해당국가 산업에서 얼마든지 동일한 방법론을 구사해 자국 상품으로 대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K팝적 방법론’은 새롭게 씌어야 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변화해가며 기존 트렌드를 뭉개버리고 새로운 트렌드로 대중을 이끄는 것. 그것이 ‘K팝적 방법론’이어야 한다. 걸그룹 상황만 놓고 봤을 때, 한국에선 2009년 데뷔한 2NE1 이후 혁신적인 모델을 제시한 일이 없다. 모두 소녀시대와 2NE1 사이에서 지점을 잡아 유사상품들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러니 쉽게 따라잡히고, 벤치마킹에 의한 시장대체 굴욕을 맛볼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트렌드를 진전시켜, 워너브라더스 카툰에 등장하는 코요테와 로드런너처럼, 따라잡을 만하면 그만큼 더 멀찍이 진화해버리는 구조를 성립시킬 필요가 있다. 정체된 국내시장 분위기는 즉시 해외시장 하락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최상의 한류전략이란 언제나 그때그때 발 빠르게 시장변화에 적응하고 선도하며 ‘변신의 귀재’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문화의 위대함을 알린다는 따위가 아니라, 범세계적 시장 트렌드 앞에 서서 잽싸게 상품을 팔아치우는 것, 그게 바로 한류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만 붙잡고 있다간, 조만간 그 ‘우리 것’은 ‘남의 것’이 돼버리고 만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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