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人]채널A 메인 MC 김성주 씨 “인생 위기 때마다 날 구제해준 건 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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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성주 씨는 항상 메모를 하며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두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방송인 김성주 씨는 항상 메모를 하며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두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안정적이고 감칠맛 나는 진행으로 사랑받는 방송인 김성주 씨(40).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스포츠 캐스터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는 ‘슈퍼스타K’ 시즌 1, 2, 3을 진행하며 화제몰이를 했다. 요즘은 채널A ‘김성주의 모닝카페’와 ‘불멸의 국가대표’ 메인MC로 활약 중이다.

2000년 MBC 아나운서가 된 이래 승승장구해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인생 커브는 ‘밑바닥을 헤매다 하늘로 치솟은 뒤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할 정도로 진폭이 컸다. 김 씨는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구제해준 건 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생의 첫 위기는 1998년에 닥쳤다. 1997년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의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곧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그는 스튜디오가 아닌 서울 시내 거리로 출근해야 했다. ‘회사를 살려 달라’는 전단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근처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 안도현 시인의 소설 ‘연어’다.

“책 살 돈도 없어 서점 바닥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보곤 했어요. 말 그대로 밑바닥에 있을 때 읽은 책이죠. 죽는 걸 알면서도 알을 낳기 위해 자기가 살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이야기에 ‘물고기도 이 정도인데, 사람이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책값이 4500원으로 생각보다 싸서 사들고 나왔죠.”

생각을 바꾸니 견딜 만했다. 입사 동기 아나운서 15명 중 그를 포함해 4명만 남았다. 힘들다고 투덜대지 않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실제로 큰 방송국이라면 초짜 아나운서가 할 수 없을 영역까지 도맡아 할 수 있었다. “2006년 월드컵 때 좋은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스포츠 중계의 웬만한 상황은 다 섭렵해놓은 덕분이었어요.”

두 번째 위기는 2007년 MBC 아나운서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프리랜서 선언을 한 후 찾아왔다. “월드컵 이후 유명해지면서 직장인으로 일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붕 떴어요. 프리 선언을 하면 여기저기서 불러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확히 1년 동안 아무 일도 못했어요. 혼란스러웠고 불안했죠. 그때 후배가 책 한 권을 선물했는데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했어요.”

김 씨는 후배가 건네준 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꺼내 보여줬다. 첫 장엔 “2007년 7월 21일, 뿌연 안개 속에 제주의 모습이 들어온다. 잘 놀자. 또 매사에 열심히 하자”고, 마지막 장엔 “2007년 10월 28일, 문학의 숲을 걸어 나오다. 석 달간의 산책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보면 ‘단 1분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문구가 있어요. 눈물이 나왔죠. 거기 나오는 문구들이 다 저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것 같았어요. 신기하게도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MBC로부터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고 2008년 2월 다시 방송을 시작했죠.”

세 번째 위기는 바로 마흔이 된 지금이라고 했다. 잘나가는 지금 무엇이 부족해 위기라는 것일까. “참 좋아요. 돈도 잘 벌고 있고요. 그런데 제가 가진 능력을 사회를 위해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제게 큰 사랑을 준 이들에게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때 제 인생을 잘 사용하고 싶다는 바람이랄까. 좋은 뜻에서 위기인 거죠.”

그래서 요즘 읽는 책이 소설가 김홍신의 에세이집 ‘인생사용설명서’다. 소설가가 책에서 인용한 자작시 ‘인연’을 김 씨는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았다고 했다. “‘천년에 한 번 숨쉬는 거북이가 수많은 구멍 중 뱃머리 송판 조각에 생긴 그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어 숨 한 번 쉴 때’ 마주칠 정도로 귀한 게 인연이라고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가족과 친구, 동료, 그리고 방송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이가 다 소중해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우리 인생도 잘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MC 김성주 씨의 추천 도서
◇연어/안도현 지음/문학동네

시인인 저자의 섬세한 감수성이 아름다운 산문으로 태어난 동화. 은빛 연어 한 마리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을 여의고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며 성장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지음/샘터

영문학자인 저자가 다양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우리네 일상과 함께 풀어 쓴 에세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살다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삶이 뜨겁게 다가온다.

◇인생사용설명서/김홍신 지음/해냄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설명서가 있다면 그 속엔 어떤 질문이 담겨 있을까. 소설가, 방송인, 정치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가’ 등 인생의 핵심을 이루는 7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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