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실패서 배우는 벤처정신… 성공만 요구하는 투자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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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글코리아 사무실에 들렀더니 벽에 걸린 “빠르게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차례 봤던 문구가 갑자기 눈에 띈 건 KAIST를 둘러싼 비극적인 소식들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극단적이었던 것처럼 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극단적입니다. 한쪽에서는 경쟁 위주의 교육을 문제라고 얘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쟁하지 않는 교육이 부당한 특혜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경쟁’이 모든 문제의 핵심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실패’가 문제 아니었을까요?

구글은 미친 듯이 경쟁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같은 정보기술(IT) 업체는 물론이고 신문사와 방송국, 여행사, 통신사 등과도 경쟁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실패를 반복했습니다.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로 막대한 적자를 냈고,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는 초기에 ‘수준 이하’라는 비웃음을 샀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실패한 직원을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유튜브는 이제 TV 방송국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안드로이드폰은 시장점유율로 세계 1위가 됐습니다. 구글은 여기에 더해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과정까지도 세상에 무료로 공개합니다. 남들이라면 ‘영업비밀’로 감출 내용이지만 구글 사람들은 “우리가 영업비밀에 안주해 혁신의 속도를 늦출까봐 두려워 모든 걸 공개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내몰면서도 이들이 이런 과정을 즐기는 건 실패를 존중하는 문화가 경쟁마저도 재미있는 게임처럼 여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IT 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심심찮게 ‘한국의 스티브 잡스’나 ‘한국의 구글’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학창 시절 반항아로 찍혔고 대학도 중퇴했습니다. 구글의 창업자들은 회사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정장에 넥타이를 맨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젊은 시절의 잡스나 나이 어린 구글 창업자들을 찾아가 뭉칫돈을 댑니다. 이들이 실패하면 투자금을 날리면서 기꺼이 책임을 나눠집니다.

반면 한국의 금융회사는 투자에 인색합니다. 대출 위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창업했다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이란 제도로 집과 재산을 빼앗아옵니다. 위험에서 돈을 벌며 살아가는 투자자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한국의 창업자는 더더욱 실패를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한국에 위험을 무릅쓰는 ‘벤처’보다 안전한 매출을 보장받는 ‘대기업 하청업체’가 훨씬 많은 이유죠.

‘나랏돈으로 과학 공부를 하고도 의대에 진학한다’는 KAIST 졸업생들이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갑니다. 한국에서 실패가 가장 적은 분야가 바로 의사와 법률가니까요. 사회의 어른들부터 너도나도 대기업 하청업체를 차리는 상황에서 공부 잘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의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 과연 적절한 걸까요?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그래서 요즘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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