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 한달]오나가와까지… 日 한달째 원전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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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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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7.4 여진에 3명 숨지고 141명 부상… 냉각장치 한때 고장 방사능 오염수 유출
‘7.4 강진’ 리쿠젠타카타 르포

김창원 특파원
김창원 특파원
7일 오후 11시 32분 일본 이와테(巖手) 현 이치노세키(一關) 시의 한 호텔. 몸을 가눌 수 없는 격심한 진동이 시작되더니 순식간에 객실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어른 키 높이의 전등이 쓰러지고 테이블 위의 물잔이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이어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

“1층으로 대피하라”는 고함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4층 건물을 한달음에 뛰어 내려갔다. 먼저 대피한 수십 명의 투숙객은 잠옷 차림으로 휴대전화만 손에 든 채 허둥대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게센누마(氣仙沼),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등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지역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과 복구 지원을 나온 공무원이었다. 모두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다들 추위에 떨면서도 객실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채 1층 로비에 주저앉아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호텔 종업원이 새벽녘에 “객실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도쿄에서 온 한 독일 여기자는 “도쿄에서 겪은 한 달 전 지진은 비할 바가 아니다”며 안절부절못했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1개월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기자는 첫날부터 대지진의 위력에 혼쭐이 났다. 일본 동북지방의 시간은 아직도 ‘3월 11일’에 멈춰 있었다. 계속되는 지진도 그렇거니와 지진에 대한 공포 또한 한 달 전보다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8일 오전 9시 리쿠젠타카타 시의 가장 큰 피난소인 다카타제1중학교를 찾았다. 강당에서 한 달째 생활하고 있는 300여 명의 이재민은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초췌한 얼굴을 한 50대의 여성은 9시간 전의 공포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 “온몸 뒤틀리는 요동 뒤 정전… 암흑속 기도밖에 할게 없었다” ▼

“온몸이 뒤틀리는 요동이 몰아치고 바로 전기가 나가버렸어요. 잠에서 깬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른마저도 어찌할 바 모르고….” 30대 주부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손자와 며느리 등 가족 5명이 함께 피난해 있는 야마모토(山本) 씨는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어젯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서로 손을 꽉 잡은 채 기도하는 것뿐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리쿠젠타카타는 한 달 전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해 6km까지 덮치면서 인구 2만3000명의 도시는 하루아침에 폐허가 됐다. 시에 따르면 7일 현재 1137명이 숨지고 1250명이 실종됐다. 3600채의 가옥이 무너졌으며 1만6000명이 피난소 73곳에 분산돼 생활하고 있다. 시민 10명 중 1명이 사실상 목숨을 잃고 70%가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리쿠젠타카타에는 피해지역 중에 처음으로 가설주택 36채가 완공돼 10일 입주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피난민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1160명이 응모한 추첨에서 운 좋게 당첨된 요시다 에쓰코(72·여) 씨는 “함께 고생하는 피난민들에게 미안해 말도 못 꺼내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 오나가와 원전마저?

NHK에 따르면 7일 밤의 리히터 규모 7.4의 강진으로 3명이 숨지고 141명이 부상했다. 게다가 지진 공포까지 오버랩됐다.

사실 요즘 일본은 지진이 나기만 하면 원전부터 돌아본다. 원전 공포증이 온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원전사고는 아직 단 한 명의 목숨도 앗아가지 않았는데도, 세계인의 눈과 귀는 원전 뉴스에 쏠려 있다.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도쿄전력은 밤 12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원전은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미야기(宮城) 현의 오나가와(女川) 원자력발전소가 지난달 11일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에 이어 7일 또다시 강타를 당해 원자로 1∼3호기의 사용후연료 저장조 8곳에서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냉각수가 흘러내렸다. 1호기에서 흘러내린 물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 농도는 5410Bq(베크렐). 이뿐만 아니라 원자로로 연결된 외부전원 4개 계통 가운데 3개 계통이 끊겼고 겨우 1개 계통으로 버티다가 이날 오후 현재 2개 계통으로 회복됐다. 후쿠시마(福島) 원전도 이 전원이 끊기면서 냉각 기능이 상실돼 위기를 불렀다.

오나가와 원전과 아오모리(靑森) 현의 히가시도리(東通) 원전의 사용후연료 저장조는 지진 발생 후 1시간 20분간 냉각 기능을 상실하기도 했다.

○ 여전히 이어지는 실종가족 찾는 행렬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됐는데도 리쿠젠타카타 시는 한 달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로가 방치돼 있고 곳곳에 건물 잔해와 엉망이 된 자동차가 뒤엉켜 있다. 해안가에 있는 3층짜리 시청 건물조차 휩쓸려가 컨테이너 10여 동을 개조한 임시사무실에서 피해 복구를 지휘하고 있지만 작업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이들의 가장 큰 고통은 아직도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지난해 폐교된 야하기(矢作)초등학교의 임시 시신안치소에는 200여 구의 시신이 보관돼 있다.

리쿠젠타카타 경찰 관계자는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 명이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으러 이곳에 온다”며 “시신이 많이 손상돼 제대로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하나마키(花卷) 시에서 왔다는 30대 여성은 “이번 지진으로 리쿠젠타카타 시에 살고 있는 7명의 친정 식구를 잃었다”며 “아직도 아버지와 동생 2명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비운의 죽음을 맞았지만 최대한의 예를 갖춰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 더 큰 여진 올 수도

문제는 아직 ‘더 큰 지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동부지역에서 규모 8급의 강진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최대 여진은 본래의 지진보다 규모 1.0 정도가 작은 것이 일반적인데, 동일본 대지진의 규모가 9.0이었기 때문에 규모 8급의 여진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도쿄대 지진연구소의 후루무라 다카시(古村孝志) 교수는 “규모 9급의 지진은 세계적으로 예가 적은 것으로 수개월 또는 1년 후 규모 8급의 최대 여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계자도 “규모 7.0 이상의 여진이 몇 차례 왔지만, 앞으로 최대 여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리쿠젠타카타·이치노세키=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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