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입을 권리 달라” 수단 여기자의 법정싸움

  • 입력 2009년 7월 30일 15시 43분


'여성들에게 바지 입을 권리를 달라!'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될 위기에 놓인 아프리카 수단의 한 여기자가 힘겨운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30일 AP, AFP통신 등에 따르면 수단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루브나 아흐메드 알 후세인 씨는 이달 초 수도 카르툼의 한 레스토랑에서 다른 여성 12명과 함께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법상 금지된 '상스러운 옷차림', 즉 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것.

당시 체포된 여성 10명은 10대의 태형과 250수단 파운드(약 13만원)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하지만 후세인 씨와 다른 여성 2명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변호사 선임과 정식 재판을 요구했다. 유죄로 인정될 경우 그는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근거한 수단 형법에 따라 최대 40대의 태형과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후세인 씨는 29일 열린 재판에 체포 당시와 똑같은 진녹색 바지에 녹색 히잡 차림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 "국제단체인 유엔에서 활동하는 유엔 직원의 자격으로 면책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권고 받았지만 이 역시 거부했다. 그는 "내가 투쟁하는 목적은 여성의 복장에 대한 부당한 규제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재판을 계속 진행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끝까지 재판을 받기 위해서라면 유엔에 당장 사표를 쓸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앞서 후세인 씨는 언론을 통해 이번 사건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5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과 지지자들에게 재판 방청을 요청했다.

사건을 맡은 마다티르 라시드 판사는 "유엔 업무를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며 사건 심리를 8월4일로 미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인권에 반하는 태형 처벌을 비난했다.

수단의 언론계는 정부가 후세인 씨를 처벌하려는 진짜 이유가 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적 칼럼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후세인 씨는 진보 신문인 '알 사하파'에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을 비판하는 글을 써 왔다. 아랍인권네트워크의 모하메드 칼리드 씨는 이를 지적하며 "이번 바지 사건은 샤리아 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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