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이 ‘입시 혼란’ 부르나

  • 입력 2009년 7월 28일 02시 50분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라디오 연설에서 “임기 말쯤(2013학년도) 가면 아마 상당한 대학들이 100% 가깝게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뽑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학년도 대학입시부터 100% 입학사정관제 또는 농어촌 지역균형선발제로 바뀌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학입시의 틀을 크게 바꾸는 계획이 정부 안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을 주도해온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 발언은 입학사정관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100%라는 숫자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00% 입학사정관제 입시’를 3년 반 만에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입시 제도를 바꾸는 일은 대통령이 한마디씩 흘리는 방식으로 공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전면 확대와 함께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반영 체제를 같이 바꾸는 복안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학부모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전체적인 입시제도 변경의 청사진을 조속히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생의 점수보다는 창의력과 잠재력을 보는 선진국형 신입생 선발제도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 제도가 정착되는 데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대학 자체의 오랜 노하우, 고교와 대학 간의 신뢰가 구축되어 있어야 가능한 제도다. 국내에서 2010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하는 인원은 47개 대학에 2만690여 명으로 2009학년도 40개 대학 4555명에 비해 4.5배 늘었다. 정부가 입학사정관제의 확대를 대학에 강하게 주문한 결과다. 이는 전체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의 6%에 불과한데도 학부모와 수험생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고, 대학도 당황하고 있다. 신입생 선발의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는 등 아직 불안한 입학사정관제를 단기간에 전면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 대통령의 발언대로 입학사정관제를 입시에 100% 도입하려면 정부의 입시 개입이 불가피하다. 대학은 각자에 맞는 입시 방식을 고집하기 마련이다. 대학에 학생선발 자율권을 돌려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뒤집는 일이다. 입시 제도를 바꾸려면 오랜 연구와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절차도 없이 사교육을 잡겠다는 한 가지 목적만을 내세워 입시를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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