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향]박태환의 부침, 그것이 인생

  • 입력 2009년 7월 28일 02시 50분


세상에, 1초 안에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다니! 그런 것은 내 적성도, 취향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힘이 넘쳐나는 열아홉 청년의 자맥질을 보는 순간, 아, 1초가 1초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것은 인생이었다. 도취였고, 황홀이었고, 영광이었다. 박태환은 진짜 물 만난 물고기였다. 식구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마침내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좋을 수가 있다니, 그는 마린보이였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마음이 부풀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었다. 나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모두 돌고래가 되고 인어가 되고 물이 되어 그와 함께 행복했다.

비난-자책 떨치고 다시 시작을

그리고 엊그제의 그 1초는? 환호와 실망의 널뛰기를 잘하는 우리에겐 그것도 인생이었다. 좌절이었고, 지옥이었다. 물속에서도 마음이 탔을 스무 살 어린 청년의 초열지옥을 언론은 일제히 충격적 예선탈락이라고 보도했다. 그 문장이, 분명히 보기보다 예민할 어린 청년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뭐든 이기면 모든 것을 덮지만, 지면 말이 많다. 말이 많아 상처에 상처를 더한다. 이래서 졌고, 그래서 졌다고. 글쎄, 관심이 있어 말이 많은 거겠지만, 그 알량한 훈수가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진 것이고, 그저 아픈 것이다. 그저 운명이다. 그리고 이제는 걱정으로 포장된 실망과 비난의 말들에도 휘둘리지 말고, 아귀처럼 달려드는 자책에도 휘둘리지 말고 다시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치열하고 치열하게. 존재 자체가 시간의 박물관인 로마에 가서도 망연해할 시간도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행히 그는 엊그제 충격을 벗고 오늘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1등은 언제나 혼자라 하지 않나. “1등”은, 그것이 의미 있는 1등일수록 화려하고 위태하다. 절대반지를 향해 달려드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무리를 따돌리지 못하면 내가 위험하고 반지를 빼앗기면 내가 휘청거린다. 우리들은 수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보는 것이고, 박태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의 차이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1등을 하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1등”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즐길 수가 없다. 그것이 체육이든, 음악이든, 작품이든, 사업이든. 그러면 진수성찬 앞에서도 허기가 지고 화려한 침상에서도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한때 ‘나’를 지지해 줬던 기대와 찬사까지 죄다 창이 되고 칼이 되어버렸으니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즐겨야 하고 즐기기 위해선 다투는 것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1등에 환호하는 세상 때문에 “1등”이라는 강박증을 앓게 되면 1등도 병이니까. 강박증을 앓고 있는 세상을 닮아버리는 순간 ‘나’의 삶은 없어지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1초 때문에 울고 웃어야 내게 그 승패가 의미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훈련시키고 긴장시키는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1등 강박증 버리고 즐겼으면

크게는 질 줄도 알아야 한다. 자기를 찾아온 슬픔을 스스로 애도하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 한다. 지지하고 지루한 날들, 참고 침묵하고 견뎌야 하는 날들 때문에 생의 뼈가 굵어지는 것이니까.

뭔가를 잃어버릴까 전전긍긍 불안해하는 인생은 최고의 순간에도 최고가 아니다. 다 잃었어도 그것을 생의 수업료라 여기는 인생 속엔 그만한 수업료를 지불하고도 아깝지 않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엄성이 있다. 나는 섣부른 비난에도 분노하지 않고 값싼 위로에도 넘어가지 않는 인생을 사랑한다. 나는 최악의 순간을 아는 최고의 순간을 사랑한다. 나는 그 최고의 순간까지도 툭툭 털어낼 줄 아는 인생을 사랑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