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베이징의 춤소년, 자유의 하늘로 날다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마오쩌둥의 마지막 댄서/리춘신 지음·이은선 옮김/588쪽·2만 원·민음사

中서 태어나 美망명한 발레리노
긴박했던 인생역정 드라마 담아

가난 - 고된 훈련 - 美문화충격 등
꿈을 붙잡는 과정 생생하게 묘사

교장선생님이 ‘우리는 마오 주석님을 사랑합니다’를 부르게 했다. “동녘이 밝아 오고 태양이 뜨고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태어났네. 인민의 행복을 위해….”

베이징에서 온 신사들은 노래를 부르는 우리를 찬찬히 보더니 눈이 크고 얼굴이 예쁜 여자 아이 한 명을 선발했다. 그들이 나가려는 순간 선생님이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아이는 어떠십니까.” 베이징 신사는 내 쪽을 흘끗 쳐다봤다. “좋소. 저 아이도 데리고 가도록 하지요.”

1971년, 중국 칭다오 인근의 농촌마을 신춘의 초등학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 발레리노가 된 리춘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베이징에서 온 사람들이 이 시골학교를 찾은 것은 마오쩌둥 주석의 부인 장칭 여사의 지시에 따라 발레로 혁명에 이바지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였다. 춘신은 신체검사와 유연성 테스트, 마오쩌둥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 심사 등을 거쳐 전국에서 선발된 최종 15명에 뽑혔다. 1972년 2월에 난생 처음 도착한 베이징은 놀라운 일로 가득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거대한 건물,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등, 인민복을 입은 멋있는 남녀….

이 책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호주에서 발레리노로 활약하다 은퇴한 뒤 현재 호주 멜버른에 살고 있는 저자의 자서전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베이징에서의 고된 훈련, 미국에서 받은 충격, 망명을 결행했을 때의 긴박했던 순간 등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책을 보면서 동시에 영상이 떠오를 정도로 장소, 인물, 사건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다.

무용학교에서의 춘신은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다. 첫 학기를 마친 뒤 발레를 포함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평균’ 또는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 잠든 시간에 촛불을 켜놓고 점프와 턴을 연습했고,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다리를 찢은 채 잠을 자기도 했다.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성적은 점차 ‘우수’와 ‘평균 이상’으로 바뀌었고 학교 대표로 주역을 맡기도 했다.

1978년 그의 인생에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미국에서 온 휴스턴 발레단의 예술감독 벤 스티븐슨이 미국에 데려갈 학생으로 선발한 2명에 뽑힌 것이다. 6주 동안 체류한 미국은 별천지였다. 1979년에는 두 번째 미국행이 성사됐고, 1980년에는 휴스턴 발레단의 공연에서 처음 무대에 섰다. “중국 출신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휴스턴 발레단은 그를 솔리스트로 승격시켰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1981년이 됐다. 그러나 그에겐 연인이 생겼고 귀국을 포기했다. 발레리노로서 더 성장하고 싶은 욕심도 그를 붙잡았다. 휴스턴 발레단의 후견인이었던 바버라 부시 여사와 미국 정부가 그의 망명을 도왔다. 중국 정부는 마침내 그를 놓아 줬다.

그러는 동안 중국도 달라지고 있었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이 가속화된 것이다. 중국에 있던 그의 가족들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1984년 그의 부모에게 미국행을 허락했다.

1984년 12월 18일, 휴스턴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 리춘신에겐 생애 최고로 벅찬 무대였다. 부모님이 객석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안무는 난도가 높았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모든 게 매끄러웠다. 에너지가 솟았다. 높이 뛰었다. 뻥 뚫린 하늘을 가르는 새처럼 날았다.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즐거웠다. 부모님 앞에서 내 생애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

세계적 성공을 이룬 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들었던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늘 가슴에 품고 ‘우물 밖으로의 탈출’을 꿈꿨던 그의 꺾이지 않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어린 시절 리춘신은 연을 날리며 신령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깊고 어두컴컴한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도 우물 밖을 향한 소년의 동경, 춤을 향한 소년의 열정은 삼키지 못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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