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1회 주인공 최종욱군 ‘호텔요리사 인턴체험 소망’ 현실로

  • 입력 2009년 7월 22일 02시 55분


‘꿈의 주방’서 인턴으로 ‘쿡’
서울힐튼호텔 박효남 총주방장
석달전 약속 안잊고 불러 지도
최군 “꿈같은 기회… 피곤도 싹”

《20일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주방. 각종 조리도구로 가득한 주방 한쪽 커다란 통 안에는 한눈에도 신선해 보이는 왕새우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연회에 쓰일 애피타이저용 새우 510인분이었다. 그 옆에선 ‘초보인턴’ 요리사 최종욱 군(18)이 칼로 천천히 새우를 다듬었다. “학교에서 이런 건 안 배워서요.” 기다란 주방 모자를 쓴 최 군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빨라지는 자신의 손놀림이 만족스러웠을까. 최 군은 곧 엷은 미소를 지었다.

대구관광고 3학년인 최 군은 4월 희망편지를 띄웠던 희망편지시리즈 1회의 주인공(본보 4월 1일자 A1·3면 참조)이다. 요리사를 꿈꾸는 그는 당시 자신의 롤 모델인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총주방장 박효남 상무(48)를 만나 호텔 일일 견학을 했다. 왼손 검지가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고 주방을 지휘하는 자리에 오른 박 상무를 만나 조언도 듣고 호텔도 돌아본 최 군은 헤어질 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방학 때 호텔에서 인턴체험을 해보고 싶어요.” 조심스럽지만 간절한 최 군의 부탁에 박 상무는 흔쾌히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 후 3개월여. 최 군의 부탁은 현실이 됐다. 박 상무가 인턴 기회를 주겠다던 약속을 잊지 않고 최 군을 호텔로 부른 것. 최 군은 방학 전인 6월 22일 미리 호텔을 찾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이달 19일 옷가지를 꾸려 커다란 가방 세 개를 들고 서울에 왔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구하기. 인턴 기간이 한 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월 30만 원짜리 서울역 근처 고시원에 숙소를 정했다.

드디어 힐튼호텔 연회부에서 인턴을 처음 시작한 20일. “전날 긴장돼서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서울 지리에 어두워 호텔을 찾느라 다소 헤맸지만 정작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니 피곤한 기색이 가셨다. 그는 “고향 친구들이 아예 이참에 내려오지 말라고 농담하기도 했다”며 “기회를 주신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뼈를 잡아주는 근육이 약한 섬유이형증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최 군이지만 이날은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도 거뜬해 보였다. 박효남 주방장은 “호텔에서 인턴을 하며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하던 화려한 주방장 생활과 현실의 차이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땀을 뻘뻘 흘리는 최 군을 바라봤다.

아직은 초보인턴이라 잔뜩 경직돼 있는 최 군에게 같은 주방 식구들은 긴장을 풀어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모자를 쓰기에는 머리가 긴 편인데 나중에 시간 나면 잘라야겠다.” 고참 김창호 과장(43)은 최 군에게 부드럽게 조언도 건네고 조리복이 더러워졌을 때 갈아입을 곳도 친절히 안내했다.

어느덧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고 점심시간. 옆에서 도와준 주방 식구들 덕분에 새우 손질을 금세 마친 최 군도 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두부와 김치볶음밥. 최 군은 어느새 접시를 하얗게 비우고 일어섰다. “얼른 가서 양념용 채소를 다듬어야 해서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임동현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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