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프로 코스튬 플레이어 “일빠라니…어이없다”

  • 입력 2009년 7월 21일 18시 27분


국내 코스튬 플레이계의 개척자로 통하는 체샤. 동아일보 정호재 기자
국내 코스튬 플레이계의 개척자로 통하는 체샤. 동아일보 정호재 기자
사진제공 체샤.
사진제공 체샤.
"낸시 랭? 낮은 수준의 코스튬 장르에 불과…컨텐츠 허브로 키우고 싶다"

코스튬 플레이계 비즈니스 모델 개척자 체샤 인터뷰

"우리나라에 등장한 지 10년이나 됐으면 누가 봐도 근사한 작품을 내놓았어야 했는데…"

국내 1호 프로 코스튬 플레이어로 알려진 체샤(본명 하신아·29)를 만난 곳은 대한민국 의류의 중심인 동대문시장 인근에 위치한 그녀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각종 옷 재료로 어지러운 사무실 한 쪽에서 새로운 사업 기획서를 작성하던 중에 기자를 맞았다.

10년 전 일본에서 수입된 코스튬 플레이(일본식 표현은 코스프레·コスプレ, 이하 코스) 1세대 격인 체샤는 현재 국내 최고의 코스 모델로 활동하는 온라인 세계의 대표 아이콘이다. 소녀같이 귀여운 캐릭터에서부터 악마적인 성녀에 이르기까지, 때론 과감한 노출도 마다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는 모델이자 이벤트 기획자이자 예술창작집단의 리더로 1인 3역을 소화하며 코스계 트렌드 세터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자신은 자부심보다는 책임감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코스튬을 파티복으로 즐기는 유저까지 폭을 넓히면 30만 명으로 보기도 하지만 매달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전문 플레이어는 아직 2000-3000명 정도에요. 하지만 게임이나 만화 등 대중문화를 직접 몸으로 즐길 수 있다는 면에서 코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죠."

코스튬 플레이란 온라인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현실 세계에 재창출하며 '노는' 일종의 하위문화. 마니아들이 증가하고 게임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여러 산업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코스는 '마니아적 성향의 10대 청소년들의 전유물'로 오인되는 게 사실. 게다가 일본 하위문화에 열광하는 '일빠'적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 "코스튬 플레이, 문화허브가 될 가능성 충분"

"어이가 없죠. 행사에 참석한 일본기자들까지 '왜 일본문화 따라하냐?'고 질문해요. 엄밀하게 코스는 스타워즈나 록키호러픽쳐쇼 같은 미국영화 마니아들이 창출한 장르거든요. 그런데 한국 게임 캐릭터를 갖고 한국 사람이 플레이해도 일본문화 따라쟁이인가요?"

한편으로 코스는 성인용 이미지로 악용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 우리가 생산하는 이미지들은 15금 수준에 불과해요. 적정한 선을 지킨다는 거죠. 문제는 섹시해보이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막고자 하는, 겉으로만 근엄한 사회 아닌가요?"

코스튬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옷을 만드는 기술 끼 외모 등 여러 조건 가운데 그녀는 가장 먼저 용기를 꼽았다. 스스로도 욕심만 갖고 있었지 엄두를 못 내던 그녀가 놀이에 참가할 수준의 용기를 갖기 까지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예전엔 평범한 아이였다면 플레이를 하면서 남이 보는 나에 대한 자각을 했기 때문 같아요. 누구라도 무대에 서면 더 나아지려고 하니까 예뻐지거나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음지에 있던 코스도 게임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폭넓게 이해되고 수용되기 시작했다. 예전엔 소수 마니아들의 취미문화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게임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코스튬 플레이어들과 원작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캐릭터를 논의할 정도가 됐다. 작품으로 평가 받은 몇몇 대작 코스튬들은 제작비만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코스에는 만화 사진 패션 온라인게임 등 거의 모든 문화장르가 총동원 되거든요. 일종의 퍼포먼스죠. 이걸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예술장르로 인정받는 게 목표에요. 따지고 보면 낸시랭도 코스의 일종이예요."

그녀의 바람은 게임을 통해 한국에서만 가능한 '가장 한국적인' 코스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코스가 비보이와 견줄 수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대표 문화 컨텐츠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