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특허 괴물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0분


다국적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네이선 미어볼드 씨(50)가 작년 10월 서울에 왔다. 자신이 설립한 특허전문회사 인텔렉추얼 벤처스(IV)의 한국사무소 개소 때였다. 그는 “한국 대학과 기업 그리고 전문 발명가의 아이디어를 발굴해 세계에 판매하는 복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0여 개 글로벌 기업과 연기금펀드(펜션펀드)를 포함한 30개 이상의 투자가가 내놓은 50억 달러로 특허 및 특허가 가능한 아이디어를 사들였다. 기업들이 이 회사를 주시하는 것은 거액의 특허소송이 두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 다른 특허전문회사인 인터디지털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해 1억3400만 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했다. LG전자는 이 회사가 소송하기 전에 2억8500만 달러의 로열티를 주기로 합의했다. 특허전문회사들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특허를 사들인 뒤 소송을 통해 특허료를 받아내기 때문에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는 악명으로도 불린다. 이들은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 물리학자 지식재산전문가를 수백 명 이상 거느리고 있다.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특허전문회사들은 각국에서 교수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해주고 특허를 공동 보유하는 방식으로도 확보하고 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푸대접 받아온 대학교수나 연구자들로서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평가해주는 이들이 고마운 존재다. IV도 이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한국외국어대 등 국내 8개 대학에서 200여 건의 발명 아이디어를 사들이기로 계약했다. 완성된 특허기술뿐 아니라 ‘치어(稚魚) 기술’까지 확보한 셈이다.

▷이렇게 팔려나간 특허가 훗날 우리 기업들에 부메랑이 돼 거액의 특허료를 요구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소송에서 질 경우 엄청난 손해를 보고, 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특허 출원이나 관리에 충분히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 특허전문회사는 특허 괴물이라고 불리지만 법률에 근거한 합법적인 비즈니스를 한다. 정부나 기업이나 지적재산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인식하고 연구자의 창의적인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줘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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