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109명이 말하는 “이 한 구절에 숨이 멎었다”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강은교-김광규-김남조 시인 등
‘…전율시킨 최고 시구’ 출간
개인적 일화-감상도 담아

고교 시절 은행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교과서와 책만 열심히 파던 고영 시인. 우연히 읽은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삶을 바꾼다. 다음 날 문예반에 가입한 그는 이후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녔고 은행 근처에는 평생 가보지 못하게 된다.

학창 시절 김이듬 시인은 거울을 매개로 병약한 왼손잡이인 자신의 모습을 시로 썼다가 정작 읽어본 적도 없던 이상의 ‘거울’을 표절했다는 누명(?)을 쓴다. 처음에는 분개하지만, 시집을 읽고 난 뒤 이상을 사랑하게 된다. 이 시들은 그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전율과 감동의 한 구절로 남아있다.

이처럼 시인들의 마음에 각인된 시구를 모은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문학세계사)가 출간됐다. 강은교 김광규 김남조 문인수 박형준 신달자 정끝별 등 109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김소월 윤동주 이상 백석 김춘수 김수영 등의 작품 중 전율을 느낀 구절을 뽑고 개인적인 일화와 감상을 실었다.

시인들은 김수영 시인의 작품을 최고의 시구로 꼽았다. 나희덕 시인은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 “그의 전언은 혼란도가 낮은, 그리하여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라고 말한다. 장석주 시인은 “비가 오고 있다/여보/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김수영 ‘비’)에 대해 “한순간에 눈이 번쩍 뜨인다. 비의 운동역학에 ‘비애’를 슬쩍 얹는 솜씨라니!”라며 감탄한다.

“눈부신 시구를 보면 감동과 전율보다는 질투에 온 입술이 파래지기 일쑤”였다던 문정희 시인은 10대 시절 서정주 시인을 좋아했다. 그는 시 제목이기도 한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에 대해 “황홀한 시구”라고 말한다. 이근배 시인은 “나는 지낸 밤 꿈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 그걸로 여기 한 채의 절간을 지어두고 가려 하느니”(서정주 ‘기인여행가’)를 꼽으며 “미당 시에 눈이 가면 내 머릿속엔 회오리바람이 분다”고 말했다.

김광규 시인은 김소월의 ‘가는 길’의 서정성을 곱씹는다. 그는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김소월 ‘가는 길’)에 대해 “아직도 이런 시구를 쓰지 못한 부끄러움을 항상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