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美의 80% 수준… 싱가포르-태국엔 우위

  • 입력 2009년 7월 11일 02시 59분


■ 해외환자 올해 9만명 유치 가능할까

MRI장비 보유 6위- CT 3위… 세계 상위권
다국적 임상시험 건수는 아시아서 단연 1위

《올해 해외환자 9만 명을 유치한다는 정부의 구상에 낙관과 비관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관광 산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 의료수준이 경쟁국보다 떨어져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대형병원들이 미국 의료기관 국제인증 시스템인 JCI 인증을 받으려는 것도 ‘의료기술과 무관한 돈 잔치’라는 의견과 ‘JCI의 국제 영향력 때문에 필요하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해외환자 유치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의료기술 수준을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 구절처럼 국내 의료수준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의료관광 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국내 교수 42% “기술격차 줄어”

2004년 대한의학회가 의대 교수 105명을 대상으로 각국의 의료수준을 조사한 결과 미국이 1위로 나타났다. 미국을 100점으로 했을 때 국내 의료수준은 80.1점이었으며 482개 항목 가운데 80점을 넘는 항목은 205개였다. 80점의 수준은 ‘최고 기술 국가의 수준까지 자체 개발할 능력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으며 잠재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수준’이다.

국내 의료기술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수가 긍정적이었다. 응답자의 42%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답했다.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교수는 13%에 불과했다.

의료기술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다국적 임상시험 건수를 보면 국내 의료수준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2008년 서울은 아시아에서 다국적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실시된 국가로 선정됐다. 서울은 338건을 기록해 싱가포르 135건, 도쿄 36건을 크게 앞질렀다.

○ 첨단 의료장비 구비 선진국 수준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 1000명당 14.0개의 병상을 확보해 세계에서 병상을 가장 많이 확보했다. 한국은 8.5개로 집계됐다.

그 나라의 의료기술 수준을 대변하는 대중적인 첨단기기로 꼽히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비와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는 일본과 호주가 인구 100만 명당 각각 40.1대와 56.0대로 가장 많았다. 한국은 MRI 장비는 16.0대로 6위, CT는 37.1대로 3위를 차지했다. 모두 10위권 이내다.

의료기술의 발달은 영아사망률 감소로 이어진다. 한국의 영아사망률은 2002년 5.3%에서 2006년 4.1%로 떨어졌다. 일본은 같은 기간 3.0%에서 2.1%로, 캐나다는 5.4%에서 5.0%로 떨어졌다. 일본은 이미 의료선진국으로 불리고 있어 우리와 단순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국내 영아사망률이 더 크게 감소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 싱가포르, 태국에 뒤지지 않아

의료관광에 적극적인 아시아 국가로는 싱가포르와 태국이 꼽힌다. 2006년 기준으로 태국은 120만 명의 해외환자를 유치해 9억 달러를, 싱가포르는 41만 명을 유치해 7억8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태국과 싱가포르의 이 같은 성과는 의료기술이나 의료시설이 앞서기 때문이 아니라 마케팅과 홍보 같은 외적인 투자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싱가포르는 정부 차원에서 글로벌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태국의 영리병원들은 미국과 영국인 경영진을 두고 있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만 260개가 넘는다. 병상은 총 44만2600여 개이며 전문의만 5만3000명 이상이다.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같은 초대형 병원은 단일 건물로만 2000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종합병원이 국내의 10% 수준인 30개에 불과하며 병상은 1만1500개, 전문의와 일반의를 합친 의사는 7400여 명이다. 태국은 싱가포르보다 규모가 큰 편이다. 종합병원이 69개, 병상은 총 13만6200여 개다. 그러나 태국은 외국인 귀빈을 유치하는 특정 민간병원의 의료경쟁력은 높지만 국가 전체 평균은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경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기술협력센터장은 “국내 의료기술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의료선진국의 80% 수준이며 싱가포르, 태국보다는 확실히 앞선다는 것이 해외 의료계의 대체적인 평가”라며 “국내 의료기술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종합적 연구에 곧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러 의료관계자 방한 전후 인식 비교해보니
한국병원 ‘4.26점 → 4.81점’ 만족도 높아져▼
마케팅 점수는 되레 하락

지난달 21∼26일 극동 러시아 의료기관 관계자 18명이 한국을 방문해 병원들을 둘러봤다. 의사 10명, 병원 행정인력 3명, 의료관광 여행사 관계자 5명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연간 2500여 명의 환자가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이번에 국내 병원들을 둘러본 러시아 의료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한국 의료 수준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의료기관 관계자들은 한국을 찾기 전 국내 병원에 대해 5점 만점에 3.05점밖에 주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 방문 후 4.31점으로 아주 높아졌다. 인식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으로 자신의 가족이나 환자들을 보낼 의향이 있다’는 문항에 대한 점수는 3.95점에서 4.44점으로 올랐다. 의료기술과 의료시설 수준에 대한 점수도 4.26점에서 4.81점으로 높아졌다. 한국 병원의 진료비 수준과 의료윤리에도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줬다.

다만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의료관광에 어느 정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두 나라의 거리가 러시아 환자의 한국 방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는 문항에 대한 점수는 4.53점에서 4.31점으로 낮아졌다. ‘한국 병원들이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문항에 대한 점수도 4.11점에서 3.75점으로 떨어졌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극동 러시아 여행사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한국 의료상품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응답이 80%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의료수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기보다는 마케팅 활동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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