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전에 문장가 되어야” 박태원은 최고 스타일리스트

  • 입력 2009년 7월 9일 03시 00분


1933년 7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구보 박태원의 소설 ‘반년간’. 구보는 이 소설을 연재하면서 직접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사진 제공 청계천문화관
1933년 7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구보 박태원의 소설 ‘반년간’. 구보는 이 소설을 연재하면서 직접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사진 제공 청계천문화관
■ 10일부터 탄생100돌 학술대회

이상, 이태준 등과 함께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었던 소설가 구보 박태원(사진). 올해 구보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구보학회는 ‘박태원과 세계문학, 세계문학 속의 한국문학’을 주제로 10, 11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학술대회를 연다. 발표와 토론 외에도 ‘소설가 구보 씨의 풍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마티아스 아우구스틴 전 고려대 독문과 교수 등 구보 작품의 번역가들이 방한해 대담을 펼친다.

○ 언어의 기교와 유머

구보는 1933년 매일신보에 기고한 ‘문예시평’에서 “누구든 한 개의 소설가이기 전에 한 개의 문장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동아일보에 소설 ‘반년간’을 연재하면서 직접 삽화를 그릴 정도로 미술에 대해 관심도 많았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김미지 강의교수는 ‘식민지 작가 박태원의 외국문학 체험과 기교의 탄생’에서 ‘조선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렸던 구보의 면모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한자어의 나열, 영어식 번역투 등 외국문학의 영향이 구보 특유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빠가 양말을 사달라는 누이의 청을 ‘놀라운 新學說(신학설)의 提唱(제창)’이라고 말하는 대목(‘누이’)이나 ‘밤은 제풀에 술집을 찾아든다’(‘낙조’) 등의 표현을 예로 들었다.

안숙원 부경대 국문과 연구교수는 ‘박태원과 소설의 여성화’에서 “박태원 소설에는 유약한 울보 남성과 유혹적인 여성의 관계가 많다”고 분석했다. 구보의 소설 ‘애욕’에는 과거에 배신했던 여자가 초라해 보여 눈물을 흘리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전말’은 아내가 가출한 동안 어린애처럼 배고픔을 호소하는 남편이 나온다. 안 교수는 “구보는 평소 기지와 해학을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보고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성역할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 유머를 만들어내는 구보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녀 성역할 뒤바꾸는 등
작품 속 유머-해학도 빛나

○ 새로운 번역문학 개척

구보는 1941년부터 약 2년 동안 월간 ‘신시대’에 ‘신역(新譯) 삼국지’를 연재했다. 월북한 뒤에는 원문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한 ‘완역 삼국지’를 내기도 했다.

번역전문가 송강호 씨는 ‘박태원 삼국지의 판본과 번역 연구’에서 “박태원은 번역작업 당시에도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여 단순한 원문의 번역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완역 삼국지’에는 전투장면을 묘사하며 쉼표를 연결해 빠르게 전개하는 구보 특유의 장거리 문장을 구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천변풍경’을 번역한 마키세 아키코 씨는 “구보가 광복된 해인 1945년 12월 발표한 ‘어린이일기’에는 ‘전에는 학교종이 캉캉캉 울렸는데 지금은 땡땡땡 울린다’고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며 “구보의 이 같은 면모는 그의 글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정현숙 구보학회 총무이사는 “구보는 내용 중심의 당시 한국 문단에 형식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세계문학의 조류를 반영한 작가”라며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구보의 실험정신은 현대 한국문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평가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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