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철딱서니학교’에 가면 철이 듭니다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방과후 산촌유학 즐거워요”강원 양양군 서면 공수전리의 철딱서니학교에서 도시 아이들은 친구 및 선생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자연의 소중함과 자립심을 배운다. 아이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전통 무예이자 심신수련법인 기천무를 배우고 있다. 양양=이인모 기자
“방과후 산촌유학 즐거워요”
강원 양양군 서면 공수전리의 철딱서니학교에서 도시 아이들은 친구 및 선생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자연의 소중함과 자립심을 배운다. 아이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전통 무예이자 심신수련법인 기천무를 배우고 있다. 양양=이인모 기자
텃밭에서 자신들이 심은 채소를 살피고 있는 철딱서니학교 교사와 아이들.
텃밭에서 자신들이 심은 채소를 살피고 있는 철딱서니학교 교사와 아이들.
엄마 아빠와 떨어져 TV 자주 못보고 컴퓨터게임 못하지만
감자-옥수수 가꾸고 설거지-청소 스스로 “어느새 의젓해졌어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강원 양양군으로 전학 온 초등학교 3학년생 익상이는 이곳 생활에 대만족이다. TV를 자주 볼 수 없고 컴퓨터 게임도 못하지만 농사에 재미를 붙였다. 자신의 텃밭에 감자, 옥수수, 상추, 토마토 등을 심어놓고 정성스럽게 가꾼다. 직접 수확한 감자와 상추를 한 달에 한 번 집에 갈 때 가져가 가족들과 먹는 맛은 꿀맛이다.

경기 화성시에서 온 지우(여·초등6)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잘 참아낸다. 지우는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씨를 뿌리고 채소를 키우는 재미도 알게 됐고 숲 속 벌레나 물고기 한 마리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은 양양군 서면 공수전리의 철딱서니학교에 다닌다. 이 학교는 서울, 인천 등 도시에서 온 22명의 아이들과 5명의 교사가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하는 곳. 일본에서 1976년 시작돼 대안운동으로 자리 잡은 산촌유학의 현장이다. 이곳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다양하다. 부모의 권유도 있었지만 방학 때 캠프에 참가한 뒤 스스로 결정을 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이문화단체 ‘또랑’이 만든 철딱서니학교는 정규 학교가 아니다. 아이들은 인근 상평초교와 공수전분교, 양양중에 다니고 철딱서니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받는다. 과목은 100% 체험 위주로 농사짓기, 개울 물놀이, 복지시설 봉사, 계곡 탐사, 물고기 잡기, 음식 만들기, 트레킹, 유적지 견학, 지역 축제 참가 등 다양하다. 숲과 계곡이 놀이터고 곤충과 동물들이 친구다. 퀼트, 기천무, 춤, 자전거, 종교 등 5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취미 생활도 한다. 캠핑카를 타고 경주에 다녀왔고 춘천국제마임축제를 관람하는 등 여행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처럼 숙식과 교육에 드는 비용은 한 달에 60만 원.

철딱서니학교는 2007년 10월 강원 양구군 동면에서 8명의 입학생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지난해 2월 2기생 27명이 입학했다. 현재 22명 가운데 8명이 이때 유학 온 아이들이고 나머지 14명이 올해 입학했다. 양구에서 양양으로 옮겨온 것도 극적이었다. 공수전분교가 학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를 맞자 마을 주민들이 철딱서니학교의 이전을 요청했고 올해 2월 양양으로 옮기면서 폐교를 모면했다.

4∼16개월 시골 생활을 한 아이들은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군데군데 넘어져서 깨지고 수풀에 긁힌 상처도 있지만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다. 철딱서니학교에선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한다. 밥과 반찬을 뜨는 것부터 설거지, 청소, 빨래 개는 일까지 자신이 해야 한다. 또 매주 한 차례 자치회의를 열어 불편한 점을 털어놓고 개선책을 찾는다. 아이들은 이제 응석만 부리던 철부지들이 아니다.

자녀를 이곳에 보낼 때 걱정하던 부모들도 이제는 마음을 놓고 있다. 철딱서니학교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달라진 점을 조사한 결과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려고 한다” “포용력이 생겼다” “떼쓰던 것이 사라졌다” “편식이 없어지고 음식을 소중히 여긴다” 등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김현덕 교사는 “이곳 아이들은 도시에선 배우기 힘든 자연의 소중함과 자율을 배우고 있다”며 “방학 때 2박 3일의 단기 캠프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양=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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