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회사채, 부메랑 되나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금융위기 영향 앞다퉈 발행
고금리 유혹에 개인들 대거 투자
만기연장 안돼 자금난 기업 걱정

올 상반기 자금난에 시달리던 국내 기업의 구세주로 등장했던 회사채가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걸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의 대출 회수가 시작된 후 작년 말부터 대안 시장으로 급성장한 회사채가 기업에 새로운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3년 미만의 단기 회사채 발행이 급증했고, 사실상 회사채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는 개인과 신협 및 새마을금고가 이 시장에 대거 투자했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 회사채를 발행한 건설사와 해운사들은 하반기에 자금 수요가 몰려 있어 금융시장의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 급팽창한 회사채 시장

2일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무보증 공모 회사채의 발행 잔액은 6월 말 현재 100조6353억 원으로 채권 시가평가제가 도입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5월까지 60조 원대를 유지하던 회사채 발행 잔액은 지난해 말부터 급증해 올해 1월 8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3월에는 90조 원을 넘어섰다. 회사채 발행 잔액은 발행된 회사채 가운데 상환되지 않고 남아 있는 금액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경색이 국내 회사채 시장을 단기간에 급성장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채권연구위원은 “세계적인 신용경색으로 국내외 금융권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고, 우량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회사채 공급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주식과 부동산 등 위험자산 투자를 기피하던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들이 소액 단위로 쪼개 판 고금리 회사채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

○ 개인 중심의 단기 채권만 급증

기업이 회사채 시장이나 증시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선진 자본시장의 형태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말과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은행은 대출 회수 등으로 극단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들어가는 데 비해 장기 회사채는 기업 자금 조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회사채 시장의 새로운 투자자로 떠오른 개인이 만기가 짧은 상품에만 집중 투자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4∼6월)에 개인이 사들인 회사채는 4890억 원 수준이었지만 올 2분기에는 1조4610억 원으로 3배가량 급증했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채권연구위원은 “전체 회사채 시장에서 개인의 투자 규모는 여전히 크지 않지만 회사채를 직접 사들인 개인은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자금 사정이 나쁜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채권 투자기관이 아닌 신협과 새마을금고 등이 사들인 회사채 잔액이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9월 이전엔 10조 원 수준이었지만 올 3월 말에는 15조 원으로 급증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신협과 새마을금고 역시 만기가 돌아오더라도 대개 연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 회사채 리스크 하반기 경제 상황에 달려

전문가들은 하반기로 갈수록 국내 기업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윤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소비가 줄자 공급을 줄이는 대신 외상 매출을 늘려 공급을 유지했다”며 “결국 물건을 팔아도 돈이 들어오지 않는 구조로 단기적인 운전 자금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1년 미만의 단기 회사채를 개인들에게 대거 넘긴 건설과 해운업종이 하반기로 갈수록 자금 수요가 커지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한국투자증권 김기명 연구위원은 “건설업계는 경기가 좋던 시절에 착공한 아파트가 완공돼 공사대금을 치러야 하고, 해운업계도 과거 주문한 선박을 인도받는 시점이 올 하반기에 집중되는 바람에 자금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사채 리스크는 결국 하반기 국내외 경제의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다행히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면 회사채 상환 리스크는 기우로 끝나겠지만 경기가 다시 침체되는 더블-딥(double-dip)이 오면 개인, 신협, 새마을금고 등이 투자했던 회사채는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신 연구위원은 “하반기에 이뤄질 기업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은행이 대출을 제한하고 지난해 말에 발행한 단기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상황까지 겹치는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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