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건강보험 20년… 재정12배 늘었지만 “아직 미흡”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병원 방문 年15.1회… 의료접근성 세계최고 수준

‘덜 걷고 덜 주는’ 구조 한계… 민영보험論 솔솔

회사원 김모 씨(51·서울 금천구)는 1989년 8월 첫아이를 낳았다. 제왕절개 수술비가 120여만 원이 나왔다. 당시 김 씨는 속셈학원에서 임시 강사 생활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터라 아내는 산전 진찰도 받지 못했다.

뜻밖에도 병원은 60만 원만 내라고 했다. 수술 한 달 전인 7월 건강보험(당시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덕이었다. 정부가 강제로 보험에 가입하란다며 투덜댔던 김 씨는 그제야 건강보험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만약 김 씨가 지금 출산을 위해 병원에 간다면 돈을 얼마나 낼까. 그동안 보장성(건강보험 혜택) 비율은 더 늘어 자연분만은 돈을 내지 않는다. 제왕절개는 20%이므로 김 씨는 24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국내에 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77년이다. 그러나 그때는 공무원과 교직원만 가입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89년 7월 1일 건강보험이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됐다. 이른바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시작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1일로 20돌을 맞았다.

건강보험 재정은 1990년 2조4320억 원에서 지난해 28조9992억 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환자 1인당 건강보험 재정 지출액도 4만8678원에서 53만2945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최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영리병원 허용, 당연지정제 폐지 주장이 거세지면서 건강보험도 ‘위기’를 맞고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 20돌을 맞아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발전 방향을 알아본다.

○ 의료접근성 세계 최고 수준

20년간 일반 국민의 의료접근성은 놀랄 만큼 높아졌다. 실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국민은 거의 없다. 국민 1인당 외래방문 횟수는 1977년 0.7회에서 지난해 15.1회로 20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인당 입원 일수도 0.1일에서 1.7일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1인당 연간 외래방문 횟수와 입원 일수는 각각 평균 7.3회와 1.2일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의료접근성이 높아진 덕택이다. 평균수명은 1977년 52.4세에서 2006년 79.1세로 늘었다. 이 또한 OECD 평균인 78.9세보다 높다. 2006년 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30개 보건지표 분석 결과 한국은 5위에 올랐다.

○ 보장성 확대가 가장 큰 숙제

건강보험 혜택을 보장성이라고 한다. 2009년 현재 암 환자의 보장성 비율은 75%이지만 나머지 질환은 65% 수준이다. 100만 원의 진료비가 발생하면 65만 원은 건강보험재정에서 충당하고 환자가 35만 원을 부담한다는 뜻이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85∼90% 선. 환자가 부담하는 돈은 국내가 높은 상황이다.

현재 국내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5.08% 수준이다. 우리와 제도가 비슷한 대만과 일본은 각각 7.7%와 8.5%이며 프랑스는 13.8%, 독일은 14.0%이다. 걷는 돈이 적어 보장성이 적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노인 틀니와 척추질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 보험을 적용하는 등 보장성 강화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이 또한 연평균 6% 이상의 보험료 인상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결국 보험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보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재정 압박의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총의료비 중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는 2001년 17.7%였지만 지난해 29.9%로 급증했으며 만성질환자도 매년 평균 9.5%씩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영리병원 민영보험과 조화 과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급여 진료를 위주로 하는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형근 건보공단 이사장은 “영리병원이 ‘윤증현식’으로 허용되면 사회보험 체제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우수한 의료진이 영리병원으로 몰릴 것이 뻔하고 당연지정제 폐지 수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11월경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논의키로 했으며 당분간은 논의를 유보한 상태다.

민영의료보험과의 역할 분담도 건강보험이 풀어야 할 문제다. 윤 장관은 민영보험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은 “병원도 여러 의료보험 가운데 선택해 가입할 수 있어야 하며 지금처럼 정부가 의료보험을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공보험인 건강보험은 그대로 유지하고 민영보험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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