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비움, 관조와 긍정… 잊고 살았던 삶과 만나다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첫 산문집 ‘느림보 마음’ 펴낸 문태준 시인

바람이 밀려드는 시원한 원두막에서의 휴식, 흙냄새 물씬한 고갯길을 걷는 한가로움, 모내기철 일꾼들이 먹는 들밥 냄새의 그윽함….

한국 ‘서정시의 적자’로 꼽히는 시인 문태준 씨(39·사진)가 1일 산문집 ‘느림보 마음’(마음의숲)을 냈다. 문 시인은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을 펴냈고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지만 산문집을 낸 것은 처음이다.

문 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시를 쓰면서 틈나는 대로 산문을 써 왔는데, 시를 쓰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주로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일어나 낮 동안 만났던 사람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 보거나 혹은 ‘마음’에 대해 생각하며 묵상하는 마음으로 쓴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펼치면 고요한 아침과 돌처럼 조용해진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휴식을 위해 꼭 어딘가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아침 저수지에 산오리들이 내려와 천천히 수면에 미끄러지는 풍경을 상상해보세요. 큰 나무 아래 나무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세요.…마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그곳이 어디든 내가 원한다면 돌아오지 않고 오래 머무를 수 있습니다.’(‘시원하고 푸른 한 바가지 우물물 같은 휴식’에서)

시인은 느림, 비움, 관조와 긍정, 마음의 평화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향 산천의 풍경, 농사짓는 아버지가 일러주신 삶의 가르침, 허기를 채워주는 한 끼 밥상의 감사함 등을 통해 현대인들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심상들을 환기시킨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산행 한 번 했다는 느낌, 너른 바다를 멀리 오래도록 바라봤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독려하고 생동시키는 데, 또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화심을 회복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지난해 시집 ‘그늘의 발달’을 낸 뒤 시는 많이 쓰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가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그래도 산문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다. 시인은 “이번 책은 시와 비슷한 문장들로 감상 위주의 글을 담았지만 나중엔 시와는 다른 빛깔과 울림을 가진 아주 좋은 산문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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