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집단지성? 익명의 집단극성!

  • 입력 2008년 6월 13일 02시 58분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71개 단어 편집중단

《“이명박은 쥐××다.” “이명박의 최근 지지율은 1%로 떨어졌다.” “이명박은 촛불집회 배후인물이다.” 최근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내용 편집을 4개월간 잠정 중단한 것은 이처럼 왜곡됐거나 편향적인 내용을 집어넣으려는 일부 반(反)정부 성향 누리꾼의 시도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판단 때문이다.

▶본보 12일자 A10면 참조
검증안된 ‘저질정보’ 홍수… ‘검색’도 헤맨다

위키피디아는 다수의 누리꾼이 지혜를 모아 브리태니커 사전에 맞먹는 백과사전을 만든 이른바 ‘집단 지성(知性)’의 상징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누리꾼의 참여를 일시적으로 금지하면서 ‘냉각기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논리적 집단 지성’보다 ‘감정적 독선과 증오’가 두드러지는 한국 인터넷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책임과 익명성의 그늘

위키피디아는 다수의 누리꾼이 쟁점에 대해 수정을 거듭하며 공동 저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이를 통해 상당한 정확성과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최근 한국어판의 이 대통령에 대한 공동 저술은 이와 달랐다. 특히 촛불시위가 확산된 이달 들어 이 대통령 관련 기술 내용을 왜곡하려는 일부 익명의 누리꾼의 시도가 집요하게 이어졌다. 또 ‘명박산성’ ‘조중동’ ‘이명박에 대한 비판’ ‘탄핵송’ 등의 단어 및 항목들이 일부 누리꾼에 의해 집중적으로 등록되거나 편향적으로 수정되기도 했다.

한국 위키피디아가 준(準)보호 조치를 취한 단어는 모두 71개. 삼성그룹 등 최근 이슈를 반영한 단어, 슈퍼주니어 SS501 등 연예인 이름이나 독도 기자조선 등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단어, 유영철 신창원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인물의 이름 등이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정보의 생산에는 적극적이지만 검증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익명성에 기대는 한국 인터넷 문화의 특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전문가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토론에 익숙지 않은 문화가 과장 및 왜곡을 부채질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위키피디아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진 않다. 하지만 한국어판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일반적 단어의 비중이 높은 편이며 대부분의 누리꾼이 실명(實名)으로 비교적 책임 있게 공동저술 및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인터넷 전문가들은 말한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토론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짧은 댓글로 표현하는 데만 익숙한 한국 누리꾼들이 남의 글을 마음대로 편집할 권리를 갖게 되자 이를 오용(誤用)하는 것”이라며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경우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항은 전문가의 조언을 인정하는 등 검증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맹목적 독선으로 치닫는 것 경계해야

한국 인터넷의 현주소가 ‘현명한 대중(스마트몹)’보다는 ‘독선적이고 맹목적 우중(愚衆)’을 양산하기 쉽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수의 누리꾼이 참여해 여론을 만든다고 해도 일부 집단에 의해 정치적 객관성이나 내용의 전문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희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지식의 신뢰연구’ 보고서에서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정보 지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특성상 태생적으로 전문성과 신뢰도의 문제가 뒤따른다”며 “이는 익명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인터넷 전문가 재런 러니어 씨는 ‘디지털 마오이즘: 새로운 온라인 집단주의의 위험’이라는 글에서 “인터넷이 실현한 집단 지성이 항상 옳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며 “인터넷이 민주주의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실력사회)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준보호 단어 중 하나로 지정된 ‘삼성그룹’의 경우 특정 누리꾼이 올 1월부터 30여 차례에 걸쳐 그룹의 모태(母胎)인 삼성상회를 다른 그룹의 기업명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촛불시위에 큰 영향을 미친 다음의 아고라는 “힘없는 개인이 모여 집단의 힘을 보여 줬다”는 평가도 받지만 촛불시위 과정 중 일부 누리꾼이 각종 ‘투쟁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사실상 실정법을 위반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의 부작용을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이달 1일 이른바 ‘군홧발 폭행 동영상’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가해자로 추정된다’며 특정 전경대원의 이름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미니홈피 주소를 아고라에 유포하고 조직적으로 항의전화를 걸었다.

또 서울 모 중학교 교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 인터넷에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욕설 문자메시지를 쏟아 붓기도 했다.

한 인터넷 포털 관계자는 “포털을 운영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면 ‘정부의 편을 든다’고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특정인에 대한 집중적 공격 등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사실상 손을 쓸 방도가 없는 형편”이라고 털어놓았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네이버 “정치적 편향 경계”…일부 누리꾼 공격에 반박

국내 1위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는 12일 “네이버 뉴스는 정치적 고려와는 무관하게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이날 오후 초기 메인 화면에 올린 ‘최근의 오해에 대해 네이버가 드리는 글’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및 촛불시위 논란과 관련해 “정치적 편향을 경계하다 보니 요즘처럼 한목소리가 큰 힘을 얻을 때 반대 목소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네이버가 정부 비판 게시물을 임의로 삭제한다’는 일부 누리꾼의 공격에 대해서는 “네이버는 반(反)사회적 표현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법적 사회적 책임도 지고 있다”며 “정치적인 게시물이 삭제될 때에는 대개 심각한 욕설이 포함된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이날 네이버의 공식 견해 표명에 대해 인터넷 업계에서는 “촛불시위에 사실상 깊숙이 관여한 포털 업계 2위 다음의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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