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살 뻗친 국가수사기관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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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업체에 보낼 수사협조 요청 팩스, 2년간 꽃집에 보내

국정원-검찰-경찰-기무부대 팩스번호 잘못입력… 꽃집주인 “신고해도 시정 안돼”

국가정보원과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들이 팩스번호를 잘못 입력해 인터넷 포털업체에 보내질 수사협조 문건이 2년 동안 꽃집에 보내진 것으로 드러났다.

잘못 보내진 협조문건에는 범죄 혐의자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와 수사기밀이 담겨 있었다.

경찰청은 2005년 8월부터 최근까지 국정원과 경찰, 검찰, 국군 기무부대 등이 수사 협조를 위해 포털업체 네이버에 보내려고 한 통신자료요청서 4000여 통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근처 C꽃집 팩스로 잘못 전송됐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수사기관들은 2년 전 네이버가 서울에서 분당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바꾼 팩스번호를 팩스 단축버튼에 입력하면서 지역번호(031)는 입력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인터넷 주소(IP) 추적을 의뢰하는 수사 협조 문건들이 네이버와 지역번호만 다르고 팩스번호 7자리가 같은 C꽃집 팩스에 밀려들었다. 그러나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꽃집 팩스로 문건을 보낸 뒤에도 네이버에 전화를 걸어 수신 여부를 확인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문건을 받지 못했는데도 ‘분명히 보냈다’며 수신 확인을 하는 전화가 수사기관에서 수시로 걸려와 팩스번호를 다시 가르쳐 주고 문건을 받았다”며 “꽃집으로 보내진 팩스를 모두 다시 받았는지는 지금으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꽃집 주인 최모 씨도 많게는 하루 10여 통씩 밀려드는 문건에 시달리다 지난해 8월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 시정을 요구했으나 문건 양만 줄었을 뿐이다.

최 씨는 경찰에 문건을 수거해 가라고 수시로 신고하는 등 민원을 계속했다.

결국 경찰청은 5월 말 전국 각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 팩스번호를 제대로 입력해 문제를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다.

또 국정원 등 다른 기관에도 최 씨의 민원을 설명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최 씨는 이날 “어제도 통신자료요청서를 몇 통 받았다”며 “10년 전부터 사용해 온 업무용 팩스번호를 바꿀 수도 없고 경찰에 신고해도 별로 개선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 경찰에 공문을 다시 보내고 다른 기관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 감찰팀은 ‘공문지시 위반’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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