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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황덕호]고립무원에 빠진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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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황덕호]고립무원에 빠진 재즈

입력 2007-08-25 03:01수정 2009-09-2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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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연계에서는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자주 들린다. 3월에 월드 퓨전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고 5월에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 그리고 지난주에는 인천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다. 다음 달에는 이미 국제적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네 번째로 문을 연다. 페스티벌마다 출연한 해외 연주자는 모두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3월부터 8월까지 열린 이들 페스티벌의 후일담은 하나같이 흉흉하다.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문뿐이다. 대부분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단기간 흑자보다는 관객 동원 규모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지만, 수치 또한 기대 이하였다. 내년에도 재즈 페스티벌이 줄을 이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이런 결과가 나올 때마다 국내 재즈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재즈란 음악은 언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라는 자조 섞인 질문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재즈는 아직도 대중에게 생소한 음악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재즈 클럽이 문을 열어 자생적으로 팬을 만들었고 이제는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재즈 뮤지션이 급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재즈는 대중에게 정체불명 미지의 음악으로 남아 있다.

왜 그런 걸까.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양해가 필요하다. 우선 재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시장이 작은 음악이다. 고전음악이 소수의 팬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재즈는 그에 비해서도 3분의 1 규모라는 것이 세계적 통계다. 재즈를 즐겨 듣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한국뿐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국내 재즈 시장의 활성화라는 과제 앞에는 음반업계 전체의 불황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전문 음악 프로그램이 실종된 라디오 편성, 다인종 혼혈문화 음악인 재즈에 대한 은연중의 배타성, 상대적으로 뒤늦은 재즈의 유입 등 저변을 넓히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시각을 좁혀 당장의 처지를 바라보면 재즈 관련 종사자가 지금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고 원칙적인 작업부터 시작하면 그만이다. 음반사는 좋은 음반을 발매하고, 평론가와 관련 언론은 좋은 글로 재즈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된다.

그래서 굳이 재즈 팬이 아니더라도 보편적인 음악 팬이라면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의 음악에 어떤 특징과 매력이 있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알고, 고흐와 피카소의 그림을 알아보는 것과 같은 교양의 영역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에서의 재즈는 교양의 영역이 아닌 마니아만의 영역에만 존재한다. 재즈 팬과 음악 팬은 소통하지 못한다. 재즈는 별도의 사람만을 위한 기이한 음악으로 굳어져 간다.

만약 음반사가 재즈의 고전을 성실한 한글 해설문과 함께 중저가로 꾸준히 발매해 그 수가 200종 정도만 됐더라도 재즈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언론과 평론가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옥석을 가려줬다면 재즈는 한국에서 좀 더 가치 있는 음악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음반의 죽음이 임박한 이 시대에, 아무도 평론을 읽지 않은 이 시기에 웬 철없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의 노력도 진심으로 하지 않은 채 공연과 페스티벌에서 이익을 바라는 것은 뿌리 없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기본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노력이 없다면 재즈는 물론이고 다양한 문화와 소수 취향이 공존하는 풍성한 문화 환경은 우리에게 늘 요원한 일이다.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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