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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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원 헌드레드 퍼센트(100%) 럭셔리하고 스타일리시해요. 그런데 리얼리티는….”

15일 개봉한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 대한 소개를 영화 속 유나(엄정화)의 화법을 빌려 말하면 이쯤 될 것 같다. 유나는 조사 빼고는 다 영어 단어만 연결해서 쓰다가 영준(이동건)에게 핀잔을 듣는데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이 딱 그렇다.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근데 영어 단어 많이 섞어 쓴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일까?

패션 컨설턴트인 유나와 호텔리어인 민재(박용우)는 친구 같은 부부, 건설회사의 젊은 경영자 영준과 조명 디자이너인 소여(한채영)는 ‘한 번도 뜨거운 적이 없었던’ 냉랭한 부부다. 네 남녀는 각각 파트너를 바꿔 한쪽은 로맨틱 코미디를, 한쪽은 격정 멜로를 찍는다. 물론 자기 남편(혹은 아내)이 바람났는지는 처음엔 모른다.

‘지금 사랑…’은 참 ‘때깔’ 좋은 영화다. 한마디로 ‘폼’이 난다. 이미지에 꼭 맞는 역할을 맡은 선남선녀 배우들은 명품으로 치장했고 직업도 멋지고 서울과 홍콩에서 가장 좋은 곳만 골라 다니며 논다. 부잣집 딸인 소여는 미용실에서 금방 나온 듯한 머리로 디자이너 브랜드의 롱 트위드 재킷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혼자 무지 괴로운 표정으로 고기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흔치 않은 행동이다. 트렌디한 바와 호텔, 멋진 숍들, 40억 원이 넘는다는 영준 커플의 집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소설인 ‘칙 릿’ 같은 분위기에 열광하는 20, 30대 여성들의 관심을 끌 것 같다. 많은 남성 관객의 관심을 모으는 한채영과 박용우의 베드신도 나온다. 기대보단 조금 약하지만.

그러나 캐릭터에 개성이 없다. TV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공식대로다. 특히 영준과 소여 커플이 그렇다. 오만하고 차가운 재벌 2세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싸가지 없이’ 대하는 여자에게 끌리게 돼 있다. 외모, 돈, 능력을 모두 가진 여성은 사실 사랑받지 못해 내면이 황폐하며 외롭다.

결혼 이후 다시 사랑에 빠지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상황이다. 정작 궁금한 건 ‘그리고 나서’다.

“우리 남편은 나 없으면 안 돼. 넌 나 없으면 안 돼?”(유나)

“그건 아냐. 하지만 당신 남편도 마찬가지야.”(영준)

‘누구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같이 살면 시시해’진다. 옛날에 그렇게 좋았으면서 또 다른 게 갖고 싶어진다. 자기도 그랬으면서 내 배우자는 안 된다…. 이 영화는 결혼과 사랑에 대해 곱씹어 볼 만한 많은 인간 심리를 전시하지만 그걸 파고들거나 제목처럼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는 못한다.

트렌디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성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재미있다. 트렌디 드라마가 그렇듯이. 18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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