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텍사스 사단’ 무너지다

  • 입력 2007년 8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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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사단의 붕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책사(策士) 칼 로브(57)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이 13일 백악관을 떠난 것을 미국 언론은 이렇게 규정했다.

CBS 뉴스는 “이로써 텍사스 3인방이 모두 백악관을 떠났다”며 부시 대통령의 남은 17개월 임기 동안 백악관 보좌진의 색깔 변화를 점쳤다. 여기서 3인방이란 로브 부실장 외에 캐런 휴스 국무부 국가이미지담당 차관, 댄 바틀릿 전 보좌관을 말한다.

텍사스의 TV방송 기자로 부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휴스 차관은 백악관 입성 1년여 만에 “고등학생 아들이 워싱턴 생활에 적응 못한 채 향수병에 시달린다”며 낙향을 선언했다. 2005년 국무부 차관으로 워싱턴에 복귀했으나 언론에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바틀릿(37) 전 보좌관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93년부터 텍사스 주지사 출마를 꿈꾸던 부시 대통령의 참모로 일했다. 14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탓에 “부시의 일생을 백과사전처럼 꿰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는 올해 7월 “세 아들과 아내 곁으로 가겠다”며 공직을 떠났다.

부시 대통령의 충성파들은 집권 7년차를 맞아 대체로 상처투성이가 됐다.

텍사스 변호사협회 회장으로서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그와 인연을 맺어온 해리엇 마이어스(62) 전 법률고문은 2005년 종신직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됐으나 ‘능력 부족’이라는 공화 민주 양당의 비난 속에 워싱턴을 떠나야 했다.

멕시코 농업이민자의 아들로 백악관 법률고문을 지낸 알베르토 곤살레스(52) 법무장관도 인준 청문회 첫날부터 테러용의자 고문 의혹, 연방검사 7명의 파면 과정에서의 거짓말 논란 등으로 공화당 내부에서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바틀릿 전 보좌관은 텍사스 인맥의 붕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참모들이 8년 임기를 모두 같이할 수는 없다. 진작 떠났어야 했지만 이라크전쟁으로 대통령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 일찍 떠날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마거릿 스펠링 교육장관, 알폰소 잭슨 주택장관처럼 정치적 논쟁에서 거리를 둔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텍사스 인맥도 있다.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서부 텍사스의 미들랜드에서 성경 공부를 함께 했던 돈 에번스 상무장관도 4년 임기를 마친 뒤 낙향한 경우다.

핵심 측근들이 내각을 대체할 정도라는 의미에서 ‘부엌 내각(Kitchen Cabinet)’이란 말이 19세기 초 생겨났을 정도로 대통령 측근 그룹의 존재는 워싱턴의 오랜 관행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 친구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조지아 마피아’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고향 측근들의 백악관 포진 규모와 충성심 측면에서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인맥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만큼 텍사스 사단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폴 라이트 뉴욕대 교수는 올해 초 방송에서 “이들은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내놓는 ‘메아리 동아리’”라고 혹평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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