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진 “간도-녹둔도 영유권 포기해선 안 된다”

  • 입력 2007년 8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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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허름한 빌딩 5층에 자리 잡은 영토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양태진 소장. 그는 “아무리 가문이 기울었다고 해도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땅으로 밀고 들어와 울타리를 치고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내줄 순 없는 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재현  기자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허름한 빌딩 5층에 자리 잡은 영토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양태진 소장. 그는 “아무리 가문이 기울었다고 해도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땅으로 밀고 들어와 울타리를 치고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내줄 순 없는 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재현 기자
“우리 헌법에서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제한한 것은 왜놈들이 정해 준 경계 안으로 우리 자신을 묶어 둔 자승자박의 결과입니다.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선 그 영토를 우리 땅으로 인식하는 영토의식의 확장이 선행돼야 합니다.”

국내에서 ‘영토사’라는 학문영역을 개척한 양태진(69) 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이 광복절을 앞두고 2권의 책을 펴냈다. ‘조약으로 본 우리 땅 이야기’와 ‘우리나라 영토이야기’(예나루)다. 전자는 중국 영토에 흡수된 백두산 일대 및 간도와 러시아 영토가 된 녹둔도 관련 역대 조약을 검토해 이들의 영유권에 대한 정통성이 한국에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후자는 1994년 출간된 책의 개정·증보판. 1999년 ‘근세한국경역논고’라는 책을 낸 지 8년 만에 나온 책들이다.

“땅덩어리로 치면 독도가 얼마나 작습니까. 그 작은 땅은 그토록 애써 지키면서 정작 그보다 몇 백배 되는 땅은 잊고 살아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 집필에 나섰어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6·25전쟁 때 월남한 양 소장은 원래 영문학도였다. 하지만 “남의 나라 것보다 당신 나라 것부터 챙기라”라는 미국인들의 말에 자극받아 1961년 국립도서관에 공채 8급으로 들어간 뒤 영토사 개척에 나섰다.

그는 이후 국토통일원과 정부기록보존소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대한민국국경문헌목록’과 ‘독도관련문헌목록’ 등을 펴내는 기초사료 발굴에 주력했다. 1980년대 성균관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1990년대 들어 영토의식 확장을 위한 대중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 토대는 백두산정계비의 ‘동위토문(東爲土門·동쪽은 토문 강을 경계로 삼는다)’이란 구절에서 이름을 따 1987년 설립한 ‘토문회’란 연구단체. 토문회는 1989∼96년 ‘영토교실’을 운영하며 300여 명의 전문가를 길러 냈다. 그러나 이를 후원하던 자산가가 갑자기 숨지면서 자금난에 빠져 지금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겨우 사무실만 운영하는 형편이지만 그의 영토사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양 소장에 따르면 간도와 녹둔도뿐 아니라 쓰시마 섬과 랴오둥, 시베리아도 우리의 잃어버린 고토(故土)다. 그는 이를 3가지로 분류한다. 랴오둥과 시베리아처럼 고대에 우리 땅이었으나 현재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구광상실(舊壙喪失) 지역, 백두산 유역처럼 주변국과 경계 설정이 애매하게 이뤄져 꼼꼼히 따져 봐야 할 재감대상(再監對象) 지역, 그리고 간도와 녹둔도처럼 명백히 우리 땅임에도 부당하게 빼앗겼으므로 되찾아야 할 원상회복지다.

“대한민국이 진정 대한제국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했다 자부한다면 최소한 간도와 녹둔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해선 안 됩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조약으로…’에서 1903년 간도 주민들이 청나라의 압박에도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한 눈물겨운 기록을 담은 ‘갑신정록’을 발굴해 소개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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