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이 한국선 왜 ‘민족’을 의미할까

  • 입력 2007년 8월 14일 03시 02분


코멘트
일제강점기 광복열망 반영
혈연적 순수 - 특수성 강조

민족, 국가의 복합 의미를 지닌 네이션(nation)이 한국에서 민족으로 고착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진경(사진) 서울산업대 교수가 학술계간지 ‘사회와 역사’에 발표한 ‘근대계몽기 대한매일신보에서 근대적 역사 개념의 탄생’이란 논문을 보면 그 일단을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우선 이 논문에서 어떻게 ‘역사’라는 개념이 단순한 과거의 피동적 서술이 아니라 독자적 법칙을 가진 실체로 발전하는지, 우리 역사와 민족의식의 발원지로 ‘단군’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살핀 뒤 역사 발전의 능동적 주체로서 ‘민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추적한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역사’가 서술의 대상에서 ‘보존’하거나 ‘만들 수 있는’ 행위의 대상 또는 신성한 주어로 등장한 것은 1907년 이후. 대한매일신보에서는 1904년까지 등장하지 않던 이 용어가 1907년 24회, 1908년 118회로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19세기 서구에서 태동한 이런 역사 개념의 등장은 곧 역사 발전을 하나의 직선상에서 파악하는 선형적 진보 관념과 결합한다.

이러한 선형적 역사진보 개념은 그 출발점을 중시하는데 ‘단군’의 등장 역시 이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준다. 1907년 ‘단군, 기자’로 등장하던 그 기원에 대한 표현은 1908년 개국 창업자로서 단군, 문명 교화의 주체로서 기자로 분리되더니 급기야 1909년에는 단군 찬미와 기자 비판으로 급전환한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족의 등장은 단군으로 상징되는 위대한 과거(고대사)에 대한 찬미와 비참한 현재(일제침략기)의 극명한 대비에 의해 이뤄진다. 이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국민이 영토에 기초한 공간적 개념이라면, 민족은 역사에 기초한 시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1월 11일자에 처음 등장한 민족이란 용어는 한동안 ‘인종’ 내지 ‘종족’과 유사한 개념으로 쓰이다 점차 역사와 강한 인접성을 보이면서 역사의 주체로 떠오른다. ‘이천만 인구, 삼천리 강산, 사천년 역사’라는 상투어와 결합되고 ‘단군을 시조로 하는 확대된 가족’이란 은유성을 획득하면서 민족이 인종, 종족, 인민, 국민과 차별화된 의미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여기서 국민은 비참하고 무력한 현재의 퇴보를 책임져야 할 경험적 주체인 반면 민족은 과거의 위대한 역사를 구현한 선험적 주체이자 이를 미래에 구현할 잠재적 주체로 분리됐다고 분석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일제강점기 한국의 ‘네이션=민족’ 개념 정립과 제국주의 일본의 ‘네이션=국민’ 개념 정립이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지적이다. 식민지를 지배했던 일본이 한국, 중국, 동남아의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보편적 국민 개념으로 네이션을 정립하려 한 반면 일제강점기의 한국에선 이에 맞서 혈연적 순수성 내지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 개념으로 이를 응축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결론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쌍둥이라는 탈민족주의론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편 한국 내에서 민족을 강조하는 진보 세력과 국가를 강조하는 보수 세력이 ‘민족, 국가’의 이중체인 네이션 개념 중 어느 한쪽만 쳐다본 내셔널리즘의 쌍둥이임을 보여 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