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도 늦으리” 이젠 ‘大入이혼’까지…

  • 입력 2007년 8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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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2년차였던 정미숙(가명·48·공무원) 씨는 올해 1월 딸(19)의 대학 합격을 확인한 며칠 뒤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정 씨의 남편(49)은 5년 전 회사를 그만둔 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술을 자주 마셨고 갈수록 주정도 심해졌다. 이들 부부는 7억 원짜리 아파트에 남편의 퇴직금으로 굴리는 주식도 있었지만 고정 수입은 정 씨의 월급이 전부여서 생활비와 교육비가 빡빡했다. 정 씨는 남편에게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권했지만 거절당한 뒤 이혼을 결심했다. 》

하지만 이혼 소송을 내기까지 1년 이상을 꾹 참았다. 수험생인 딸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딸의 대학 합격은 정 씨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이처럼 자녀의 대학 입학을 계기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대입 이혼’이 늘고 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남편의 정년퇴직으로 퇴직금이 나온 뒤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 이혼’이 사회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혼을 결심하는 시기가 남편의 정년퇴직 후가 아닌 자녀의 대학 입학 시기로 더 앞당겨지고 있다.

○ 대입 이혼, 왜 늘어나나

박정은(가명·41) 씨는 남편(44)과 현재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박 씨가 3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지방의 치매노인단체를 찾아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을 남편이 못마땅해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박 씨는 “남편은 내가 집에만 있기를 원했고, 가정에서 왕처럼 군림하려 했다”며 “21, 20세 두 아들도 대학에 넣었으니 나도 새 삶을 찾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인 결혼 20년차쯤이 되면 상당수 중년 여성이 ‘제2의 인생’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경제적으로 안정돼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게 된 중년 부인을 남편이 권위적으로 대하면 부부간 충돌이 빚어진다”고 말했다.

이상석 이혼 소송 전문변호사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경제적으로 독립하려는 중년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럴 때 부부가 갈등 관계에 있다면 자녀의 대학 입학은 이혼 결심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자녀에 대한 아내의 과도한 교육열이 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퇴직 후 자영업을 하던 김경호(가명·53) 씨는 수입이 예전 같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아내(51)는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다니는 첫째와 올해 대학에 입학한 둘째 아이에게 해외 연수를 보내겠다고 한 것이 원인이 돼 최근 이혼했다.

김 씨는 “형편이 어려운데 아내가 원하는 것처럼 성인이 된 자식까지 ‘아기 돌보듯’ 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이혼 이유를 밝혔다.

○ 대입 이혼, 얼마나 늘었나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2만5032쌍으로 2005년에 비해 2.7% 감소했다.

1980년대 말부터 급증하던 이혼은 2004년에 전년보다 16.6% 줄어든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5년 3월 성급한 이혼을 막기 위해 ‘이혼 숙려제’를 도입한 이후 이혼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2005년부터 65세 이상 노년 부부의 ‘황혼 이혼’이 늘더니 지난해에는 45∼54세 중년 부부의 이혼이 더 크게 증가했다. 다른 연령대에서 이혼이 줄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현상이다.

지난해 45∼49세 여성 중 이혼한 사람은 8111명으로 2005년보다 10.1%가 늘었다. 50∼54세 여성은 3711명으로 2005년보다 16.9%가 더 이혼했다.

20대 중·후반에 결혼해 30대 초까지 자녀를 낳는 여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대 중·후반과 50대 초반 여성의 이혼 시기는 자녀의 대학 입학 시점과 맞물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접수한 전체 이혼 상담 건수(8460건) 가운데 40, 50대 중년 부부의 상담 건수는 4454건으로 절반이 넘는 52.7%를 차지했다.

이 상담소의 조경애 상담위원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격 등의 차이로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중산층 가정의 이혼이 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 부모에게 ‘제2의 인생’을 찾으라며 이혼을 권유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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