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업적 바라는 盧대통령 이용 원조확대 노려”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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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가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하면서도 정상회담이 거둘 성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정상회담 성사를‘노무현 정부와 김정일 정권의 정세 및 이해득실 판단이 서로 맞아떨어진 데 따른 합작품’으로 진단하며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이들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히 남북 정상회담 추진이 한국의 대선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대부분의 미국 전문가는 남북관계의 진전 자체는 환영했지만 이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핵심 현안인 북한 핵개발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낙관론을 유보했다.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북한이 정상회담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놀랍다”며 “그러나 남북 협상은 북핵 문제와 분리돼 진행돼 왔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북핵 협상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은 “제네바 기본합의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열린 2000년 6월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핵 보유국을 자처하는 상태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잘못 접근할 경우 한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 회담은 북핵 협상 등 한반도 상황의 요구에 따라 이뤄졌다기보다는 재임 중 업적을 남기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열망과 이를 이용하려는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오공단 국방연구원 연구원은 “레임덕 시기가 되면 (영향이 큰 정치적 행위를) 자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노 대통령의 경우엔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적중했다”며 “북핵 문제가 관련국들의 공조로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도 아니고 한국 대통령이 평양까지 찾아가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표면적으론 지지한다고 말하겠지만 속으론 ‘한국 정부가 끝까지 예측불허로 국제공조를 벗어난다’며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일본 전문가들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집착해 온 일본 정부로선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당혹스럽겠지만 기존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정권 말기 구심력 저하를 막고 싶은 노무현 정부의 의도와, 대미관계에서 평화체제 확립을 노리며 한국으로부터 새로운 실리를 확보하려는 김정일 정권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일본 정부로선 초조하겠지만 참의원 선거 참패의 혼란 속에서 외교 기조를 바꿀 만한 여력이 없다”며 “납치 문제에 대한 집착이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대북 문제에 대한) 고립을 가져왔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이를 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교수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일본 내에서도 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냉소적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고하리 교수는 그 이유로 “한국에서 대선이 가까워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인 데다 한반도와 관련해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고립감을 느끼는 것도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지만 북한으로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보다 경제원조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클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장롄구이(張璉괴)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8일 “북한이 한국의 정상회담 요구에 줄곧 불응하다 뒤늦게 응한 것은 식량 등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핵 해결 등 현안이 이번 회담을 통해 큰 진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관계 전문가인 스인훙(時殷弘) 런민(人民)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국의 대선국면을 이용해 좀 더 많은 경제 원조를 얻어내려 할 것이라며 “북핵 문제나 한반도 안보체제 구축 문제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치바오량(戚保良)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한반도연구실 주임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경제협력의 폭이 커질 것”이라며 “그러나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는 걸림돌이 많아 이른 시일 내에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러시아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환영하면서도 러시아를 배제한 4자회담 개최가 합의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게오르기 불리체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은 “회담 개최지가 평양으로 다시 선정된 것은 북한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알렉산드르 제빈 극동연구소 한국과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동방학연구소 한국학과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회담 의제가 핵 폐기 문제로 한정될 경우 러시아의 양해를 구할 수 있겠지만 러시아를 배제한 4자회담 개최 등이 합의될 경우 러시아 측 심기가 불편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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