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태평양전쟁희생자법, 거부권 행사는 바른 길

  • 입력 2007년 8월 5일 23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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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태평양전쟁희생자지원법에 대해 지난주 거부권을 행사했다. ‘생존해 있는 생환자(生還者)에게 1인당 500만 원씩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생환 후 사망자는 물론 6·25 참전용사 등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회는 위로금의 재원에 대해서도 정부와 아무런 사전 협의가 없었다.

위로금을 기대한 당사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당초 정부와 국회가 협의해 만든 단일 법안에는 위로금 조항이 없었다. 일부 의원이 불쑥 위로금 조항을 넣어 수정안을 제출했고 국회가 그냥 통과시킨 것이다. 이런 입법을 방치할 경우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했다고 본다.

이처럼 부실한 의원 입법이 17대 국회에서 유독 많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정부 법안으로 준비해 온 특수고용직보호법을 의원 입법 형식으로 6월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입법을 하려면 공청회, 국무회의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의원 10명의 서명만 받으면 되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이 법안은 결국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작년엔 남해안균형발전법안이 제출되자 남해안발전특별법, 남해안발전지원법 등의 발의가 잇따랐다. 동해안개발특별지원법안도 뒤를 이었다. 이처럼 의원 입법은 특성상 민원성, 지역구 챙기기형, 선심성이 되기 쉽다. 의사협회 로비사건에서 보듯 특정 업계에 특혜를 주는 내용으로 변질될 수 있고 이 과정에 금품이 오가기도 한다. 지역구나 배후 이익단체가 다른 의원들끼리 상대의 법안을 서로 지지해 주는 ‘바꿔 먹기’ 가능성도 높다.

부실 입법이 자행되면 국가재정이 멍들고 결국 납세자가 피해를 본다.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국회 로비 잘하는 기업이 살아남게 돼 소비자도 피해를 입는다. 시장원리가 왜곡돼 경제의 효율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국회의 입법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 입법 역량을 제도적으로 보완해 부실 입법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최근 신설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인력 수준을 크게 높여 잘 활용해야 한다. 입법 때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민단체들도 법안 발의 건수가 아니라 그 내용과 질(質)로 의원을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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