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신록이 혁명처럼 터져 나는 초록에 빠졌다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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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의 상림.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과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이양하 선생의 수필 ‘신록예찬’ 중에서.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경남 함양의 상림.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과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이양하 선생의 수필 ‘신록예찬’ 중에서.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초록빛 목초지를 수놓은 새하얀 양떼의 평화로운 풍경. 신록의 5월 대관령이 주는 선물이다.
초록빛 목초지를 수놓은 새하얀 양떼의 평화로운 풍경. 신록의 5월 대관령이 주는 선물이다.
대관령 고원의 백두대간 마루를 장식한 풍력발전기.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난다.
대관령 고원의 백두대간 마루를 장식한 풍력발전기.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난다.
《‘신록삼제(新綠三題).’ 5월의 초록 숲(함양 상림, 평창 용평리조트)과 양떼 뛰노는 들판(대관령 양떼목장)을 이름이다. 초록을 노래함은 자연의 섭리이자 그 자연을 모태로 삼은 모든 피조물의 도리. 그게 꼭 5월이어야 할 이유 역시 분명하다. 한여름 초록은 되바라져 싫고 초봄의 신록은 너무 비려서 싫다. 신록예찬.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이 되었건만 그래도 생각나는 이양하 선생의 이 수필. 까까머리 교복 시절에는 글 밑에 줄쳐가며 시험공부로 읽던 초록이 그 글의 무대(연세대 교정의 청송대 숲)에서 청춘의 4년을 보내는 우연을 득한 이후는 이따금 그 신록을 그 글 무대에서 몸소 체험하는 행운도 보듬었다.

선생은 ‘신록예찬’에서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과 같은 청춘시대―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이라 하셨다.》

글·사진=함양·평창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ol@donga.com

#1. 대관령 목장길 걸어보세요

산의 마루 금(능선)을 보자. 빗방울 하나를 둘로 쪼개어 서로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반대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자연의 선(分水嶺)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여암 신경준의 눈은 혜안이다. 그는 이를 두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 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제어로 ‘1대간 1정간 10정맥’의 백두대간 산줄기로 한반도의 지형을 설파했다. 그 책이 백두대간을 최초로 언급한 인문지리서 ‘산경표’다.

마루 금이 산이 그린 선이라면 고개란 사람이 그린 선이다. 마루 금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쪼개진 빗방울은 다시 만날 수 없다. 그러나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다. 고갯길로 오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현인들은 이른다. 사람 손으로 만든 것 중 제일은 다리(橋)요, 사람 발로 이룬 것 가운데 으뜸은 고갯길(峙)이라고.

모든 고개에는 변치 않는 원칙이 있다. 주변 산마루의 가장 낮은 부분을 지난다는 사실이다. 대관령이 그렇다. 오르내림이 바쁜 대간 산줄기 가운데서도 개중 낮다. 그래서 사람도, 차도 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이 고개로 산을 넘어 반도의 동서를 오갔다. 물론 지금은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터널 개통으로 지하로 오가는 ‘변칙’이 난무하지만.

대관령에서 대간 마루 금을 따라 걷다 보면 이내 선자령(1157m)에 이른다. 많을 때는 하루 3000명이 트레킹을 즐기는 인기 만점의 산행구간이다. 이유는 멋진 풍광. 해발 700m 이상에 펼쳐진 광대한 대관령 고원의 원시림과 초원이 발 아래 놓인다. 게다가 대관령까지는 차로 오르기 때문에 백두대간 줄기를 타기 위해 두세 시간씩 능선까지 오르는 수고를 덜 수도 있고.

대관령 삼양목장은 그 능선의 서편 아래 고원(해발 850∼1470m)에 자리 잡았다. 워낙 해발고도가 높아 10일경에야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계곡 깊숙한 응달에는 아직도 잔설이 성성하고. 35년 전(1972년) 조성된 이 목장. 축산업의 쇠락으로 지금은 홀스타인 얼룩소 600여 마리만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이 목장은 요즘 관광지로 더 인기다. 목장 안 대간의 마루 금에 들어선 거대한 풍력발전기(총 42기) 덕분. 대관령 양떼목장은 여기서 멀지 않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상행선)의 주차장 바로 앞(걸어서 5분)이다. 산자락 구릉에 조성한 초록빛 목초지에서는 양 300여 마리가 한가로이 풀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창 자라기 시작한 목초로 온통 초록빛을 이룬 이곳. 연중 어느 때보다도 싱그럽고 생기 있다. 목책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있다. 양떼가 노니는 초원을 감상하며 산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입장료가 없는 대신 양에게 먹일 목초를 사야 된다. 어른 3000원, 어린이 2500원.

#2. 함양 상림숲 그늘 아래서

세상기운이 가장 힘차게 솟는 이즈음의 초록은 사람에게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려거든 지금 떠나라. 그 초록 생기가 땡볕 아래서 몽땅 증발해버리기 전에. 상림 숲은 초대형이다. 길이가 1.5km에 폭이 80m에서 200m나 될 만큼.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상림 숲은 별천지다. 생생한 초록의 숲 그늘 덕분. 그 초록 그늘 아래에 서면 모두가 초록빛에 물든다. 옷을 비틀어 짜면 초록물이 줄줄 흘러나올 듯이. 녹음 짙은 아름다운 숲길. 산책로는 양편에 두른 나뭇가지의 초록 잎에 덮여 숲 터널을 이룬다. 좁고 긴 오솔길. 숲은 좀 더 은밀하게 다가온다. ‘뚜두두두두두두두두…’. 둔탁하지만 공명이 좋은 나무 두들김소리. 딱따구리의 소행인 듯하다. 숲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그늘 덕분만은 아닐 듯싶다. 그렇지. 바지 걷고 들어가면 정강이쯤 찰 얕은 개울이 숲 한가운데로 흐른다. 개울이 시작되는 숲의 초입. 거기서는 물레방아가 돈다.

상림 숲길을 걷다 보면 역사를 만난다. 통일신라 말기의 문호인 고운 최치원(857∼?), ‘열하일기’를 쓴 조선의 박지원(1737∼1805)이 그 주인공이다. 시대를 달리해 이 고을에 부임했던 두 사람. 이 숲에는 그들의 발자취가 아직도 선명하다. 먼저 고운 선생을 보자. 이 숲 자체가 그의 작품이다. 숲가로 흐르는 위천이 자주 범람하자 선생은 그 옆에 이 인공 숲을 조성해 수해를 막았다.

그 위천은 지금도 유유히 숲가로 흐르고 게서 따낸 물줄기 하나가 이 숲을 관통한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힘은 그 물줄기다. 물레방아를 우리 고유의 것으로 알고 있던 분들. 상림에서 공부하게 된 것에 감사하시길. 물레방아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수입문화다. 그 주인공은 연암 박지원. 1780년 청나라 사신을 따라 중국 여행을 한 뒤 지은 문물탐방기 ‘열하일기’에서 물레방아를 처음 소개했다. 그리고 1792년 안의현감으로 함양 땅에 부임한 연암은 국내 최초의 물레방아를 여기 함양에 설치했다. ‘함양산천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돈다’는 민요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스스로 ‘물레방아 고을’이라 칭한 함양군. 같은 이름의 축제도 매년(10월) 열고 있다.

#3. 용평리조트 삼림욕

대관령목장을 나와 횡계리(평창군 도암면)에 이르면 용평리조트 진입로가 나온다. 골프장과 스키장을 갖춘 해발 700m 고원의 사계절리조트지만 대개는 ‘스키장 용평’만 기억하는 잘못을 범한다. 지금 용평리조트에 가보라.

온통 초록의 물결로 넘실댄다. 특히 곤돌라로 오르는 발왕산 정상에서는 연해주를 향해 힘차게 달리는 백두대간의 산줄기도 감상할 수 있다. 대관령 고원의 멋진 풍경과 함께.

산등성의 숲 속에 가설한 콘크리트 레일을 따라 달리는 마운틴코스터, 사륜구동 오토바이 체험장, 실내 풀과 테니스장 등 30여 가지의 실내외 레저스포츠 시설이 있어 가족 나들이에 그만이다. 특히 자작나무가 많은 숲에는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도 있다. 서울 도심에 비해 기온 차가 10도까지 나니 주의해야 한다.

○ 여행정보

◇상림 ▽찾아가기=대전통영고속도로∼함양 갈림목∼88고속도로∼함양 나들목∼함양읍내 ▽주소=경남 함양군 대덕읍 246

◇대관령 ▽삼양목장 △찾아가기: 영동고속도로∼횡계 나들목(우회전)∼지방도 456호선∼삼거리(직진)∼횡계로터리(직진)∼삼거리(좌회전)∼삼양목장 △홈페이지: www.samyangranch.co.kr △주소: 강원 평창군 도암면 횡계2리 산1-107 △전화: 033-335-5044 ▽양떼목장 △찾아가기: 영동고속도로∼횡계 나들목(우회전)∼지방도456호선(강릉 방향)∼영동고속도로 굴다리밑∼옛 대관령휴게소(하행선)∼고가도로∼옛 휴게소(상행선) △주소: 횡계3리 14-104 △전화: 033-335-1966

◇용평리조트 ▽찾아가기=영동고속도로∼횡계 나들목(우회전)∼삼거리(우회전) ▽홈페이지=www.yongpyong.co.kr ▽주소=강원 평창군 도암면 용산리 130 ▽전화=1588-0009, 033-335-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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